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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숙청

Posted September. 21, 2005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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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북한은 중남미의 한 소국()을 상대로 농업이민을 추진한 적이 있다. 북한 농민 수백 명을 이 나라로 이주시킨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식량난으로 고통받던 북한이 이렇게 해서라도 숨통을 틔우고자 했던 것일까. 아니다. 체제 붕괴에 대비해 북한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제3국으로 소개()하는 방안을 마련해두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이 계획에 관여했던 한 재미동포의 제보였다. 이 제보는 당사자의 요청으로 기사화되지는 않았다.

북한 연구자들은 북한 정권과 주민을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북한 정권은 체제유지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에 고통받는 주민을 겨냥한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 정권이 그토록 지키고자 애쓰는 체제 핵심 세력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극소수 측근 몇 명에 불과할 것이다.

그 증거가 최근 발간된 신동아 10월호에 소개돼 관심을 끈다. 탈북해 해외에 머무르고 있는 북한의 한 전직 관료가 폭로한 이른바 심화조 사건이다. 사회안전성이 주도한 심화조라는 전국조직이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인 1997년부터 2000년 사이에 무려 2만5000명의 인사와 그 가족을 숙청했다는 것이다. 숙청된 인사들 중에는 중앙위원회 간부, 평안남도 책임비서 등 노동당 고위층이 즐비했다고 한다. 심화조의 반()체제 소탕작전은 물론 김 위원장의 재가()를 받았다. 북한 지도층의 특권적 지위가 사실은 이처럼 허약한 것임을 보여주는 예다.

독재 권력은 속성상 혼자 부르는 아리아이지 함께 부르는 오페라가 아니다. 독재 권력을 지키기 위해선 특권층과 서민 구분할 것 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 강한 공포감을 심어 줘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하지만 그런 공포정치는 특권층의 이반() 심리를 조장하고, 결과적으로 독재의 기반에 균열을 가져온다. 역사적으로 수없이 증명된 독재와 공포의 이율배반적인 함수관계, 그 진리를 김 위원장만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송 문 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