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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다시 핵 줄다리기

Posted September. 21, 2005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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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0일 경수로를 먼저 제공해야 핵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것은 앞으로 북핵문제 협상 과정이 길고도 험난할 것임을 예고한다.

제2차 북핵 위기가 터진 2002년 10월 이후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데에만 3년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핵 포기 이행엔 훨씬 많은 시간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어정쩡한 공동성명이 논란의 진원=북한의 주장은 공동성명에 경수로 제공과 핵 포기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데서 비롯됐다.

공동성명은 핵 포기의 시점은 언급하지 않은 채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이행에 대해선 조속한 시일 내라고만 규정했다. 경수로 문제는 적절한 시기에 논의한다고만 돼 있다.

상식적으로는 조속한 시일이 적절한 시기보다 앞선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엄격히 말하면 북한의 주장이 공동성명을 위반한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미국이 북한과 상반되는 주장을 펴는 것도 역시 모호한 공동성명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에 기반을 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동상이몽=북한은 경수로 문제 논의-경수로 제공-NPT 복귀 및 IAEA 안전조치 이행-핵 포기의 순서로 공동성명을 이행하겠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핵 동결은 IAEA의 안전조치 이행과 맞물릴 공산이 크다.

반면 미국은 핵 동결과 함께 NPT 복귀 및 IAEA 안전조치 이행-경수로 문제 논의 및 핵 포기 절차 이행-핵 포기 및 경수로 제공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미리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이론을 말하는 것이라고 선을 확실히 그은 데서 더욱 분명해진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NPT에 복귀하고 IAEA 안전조치를 이행하면 평화적 핵 이용권을 갖는다는 것이지, 실제로 북한에 이 권리를 준다는 약속은 아니라는 의미다. 경수로는 평화적 핵 이용에 포함된 개념이다.

문제는 경수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핵 포기와 보상이라는 북핵 해법이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핵 포기 및 경수로 제공 절차는=11월 5차 6자회담에서는 어떤 핵시설을 언제부터 어떤 순서로 폐기할 것인지, 그 대가로 무슨 에너지를 어느 규모로 언제부터 제공할지, 경수로는 언제부터 논의하고 제공할지 등을 다룰 것이란 게 정부 측 설명이다.

분명한 것은 핵 폐기 이전에 핵 시설의 가동을 중단하는 핵 동결 조치가 이뤄져야 하고 이 과정에 IAEA 등 국제사찰단의 감시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핵 시설 해체 작업의 어느 단계를 핵 포기로 인정하느냐도 논란이 될 수 있다.

핵 포기는 핵무기를 없애고 핵심 기능을 제거한 단계, 즉 돌이킬 수 없는 단계를 가리킬 수도 있고 핵시설의 잔해 제거까지 완료된 시점을 기준으로 할 수도 있다.

구식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한 경험이 있는 서유럽의 경우 주변 지역의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몇 년 동안 동결조치를 취한 다음 해체 작업에 들어간 적도 있다. 해체 작업만도 몇 년이 걸린다고 한다.

북-미의 이런 인식 차이에 따라, 또 앞으로의 협상 결과에 따라 경수로 논의 및 제공이 시작되는 시기에는 몇 년의 편차가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앞으로 북-미 간 줄다리기가 얼마나 치열하게 진행될지 예고하는 대목이다.



윤종구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