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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래 구름띠 한국인 기상 발원하다

Posted January. 13, 2005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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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4시. 중산리 계곡(경남 산청군 시천면)의 골에 갇힌 어두운 하늘 위로 뭇별이 반짝인다. 잿빛 하늘의 도시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초롱초롱한 별, 별, 별. 어찌 그리도 많고 밝던지 딴 세상에 온 듯하다. 하늘 저편에는 조각난 반달이 별과 함께 길고 긴 겨울밤을 함께 새운다.

칼바위 지나 로터리 대피소에 이르는 2시간여의 산행 길. 고된 다리를 쉬게 한 뒤 다시 오르던 중 반짝이는 불빛을 본다. 법계사다. 아직 골 안 산중은 어둠 천지고 대처의 속인들은 깊은 잠에 빠질 시각. 그러나 스님들은 이미 새벽 예불에 아침 공양까지 마치고 일상을 시작한 지 오래다.

오전 7시 천왕봉(1915.4m) 바로 아래 난간에 이를 즈음. 그윽한 여명 물리치고 먼동 트던 동편 하늘로 흰 구름이 떼 지어 몰려든다. 태양열로 인한 공기의 대류가 시작된 탓이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의 해돋이. 별빛 초롱대던 맑디맑은 새벽하늘을 보고 오늘만큼은 만나리라 자신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는 운이 나쁘지 않았다. 운해() 위로 앳된 해를 볼 수 있었으니.

드디어 천왕봉이다. 4시간의 산행 내내 바람 한 점 없었건만 정상에 오르니 몸을 가누기 힘든 강풍이 사방에서 불어온다. 그 바람 속에서도 정상의 돌무더기 꼭대기에 놓인 천왕봉 표석은 요지부동이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표석 뒷면의 글귀다. 대륙의 기상을 예서 폭발시키는 백두대간의 시작점 지리산. 이 산에 오름은 내 안에 선연한 백두산의 정기를 다시금 확인하는 의미 있는 여행이다.

이제 대간 종주다. 산의 마루금을 따라 걷는다. 정상 표석을 뒤로하고 돌무더기를 내려선다. 산마루는 온통 흰 눈에 덮여 있다. 좌우 앞뒤 그 어느 곳도 막힘없이 온 세상이 훤히 바라다보인다. 세상 꼭대기에 오른 듯하다. 마루금 따라 제석봉으로 가는 길. 왼편으로 새벽 내내 오른 중산리 계곡(산청)이, 오른편으로 경남 함양과 전북 남원 땅이 보인다.

순식간에 흰 구름이 온 산 중턱을 에워싼다. 운해다. 구름 위 산정은 더더욱 별천지다. 고된 산행의 피로가 싹 가시는 순간이다. 제석봉 근방은 죽어 말라 비틀어진 고사목이 나뒹구는 민둥산이다.

이어 닿은 곳은 장터목. 지리산 양편의 함양과 산청 두 고을 사람들이 제각각 물건을 가져와 팔고 사던 산중 장터다. 그리 넓지 않은 산마루 평지에는 조리실과 숙소(마루침상)를 갖춘 산악대피소가 있다. 헬기로 공수해 온 식료품과 약품도 판다.

이제 하산할 시간. 함양의 백무동 혹은 산행 출발지인 산청의 중산리 어느 편으로도 갈 수 있다. 그 길은 모두 장터목으로 물건 지고 이고 오르던 선조들의 땀이 서린 옛길이다.

산행 정보

코스 올라가기=중산리칼바위로터리 대피소법계사천왕봉(7.4km) 마루금=제석봉장터목 대피소(1.7km) 내려가기=장터목유암폭포중산리계곡(5.3km)

주의사항 야간산행 금지=일출 일몰 2시간 전 금지(1월 1일만 제외) 식수=탐방로 샘이 얼어붙고 대피소에는 물이 부족하니 산행 전 충분히 확보 대피소 숙박=지리산국립공원 홈페이지(www.npa.or.kr/chiri)를 통해 1인당 3명까지 215일 이전 예약. 이용 시 신분증 확인. 이용료는 연하천 피아골 뱀사골(이상 5000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7000원.

문의 전화 지리산 관리사무소=055-972-77712 중산리분소=055-972-7785 장터목 대피소=016-883-1750



조성하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