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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째 이적 그래도 꿈은 있다

Posted December. 07, 2004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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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왜 1인분은 안 되나요?

7일 낮 대구 시내 식당에 들어간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저니맨 최익성(32). 여느 때처럼 혼자 식당에 가서 점심식사를 시켰지만 그가 메뉴를 부를 때마다 주인은 모두 2인분 이상 시켜야 하는 메뉴라며 고개를 저었다.

최익성은 1인분이라도 해 달라고 우겨 낙지볶음을 시켰지만 입에선 쓴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휴, 언제까지 혼자 밥을 먹어야 하나.

두산 롯데 빼고 다 뛰어봐

최익성은 국내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이 팀을 옮긴 선수다. 야구뿐 아니라 국내 스포츠를 통틀어도 그처럼 이적을 많이 한 선수는 없다.

삼성-한화-LG-해태(기아)-현대에 이어 올해 삼성으로 되돌아갔다가 방출된 그는 7일 SK와 연봉 5000만 원에 계약했다. 동봉철 이광길 이동수 등 다섯 번 이적한 선수들이 있었지만 여섯 번 이적한 건 최익성이 처음. 그가 뛰지 않은 팀은 두산과 롯데뿐이다.

프로구단서 세 번 잘린 셈

경주고-계명대 출신의 최익성은 다른 선수들과 달리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1994년 삼성에 계약금 없이 연봉 1200만 원짜리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지난해엔 현대에서, 올해엔 삼성에서 방출당했다. 최익성은 프로구단으로부터 지명받지 못한 것과 두 번 방출된 걸 합하면 세 번 잘린 셈이라고 말했다.

1997년엔 20-20 클럽 가입

1997년과 1998년은 최익성의 전성기. 특히 1997년엔 22홈런 33도루로 20(홈런)-20(도루)클럽에도 가입하는 등 호타준족의 선수로 주목받았다. 일발 장타에 발이 빠른 데다 외야수로 어깨도 강해 팀 공헌도가 높았다.

1999년 노장진과 맞바뀌어 한화로 트레이드된 걸 시작으로 최익성의 유랑생활은 시작됐다. 2000년 LG, 2001년 해태(기아), 2002년 현대 등 매년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자신이 트레이드 대상으로 자주 떠오른 점에 대해 최익성은 난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니다. 틀린 걸 맞다고 하질 않는다. 그런 강한 성격 때문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만족감 들 때까지 할거야

프로에 들어와 10년 넘게 운동하는 동안 경기에 나간 것보다 2군에서 보낸 세월이 더 많습니다. 2군 훈련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면 반 미친 사람이 됩니다. 벽을 보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TV만 봐요. 해마다 낯선 도시를 돌며 홀로 생활하다 보니 친구도 못 사귀고 여자친구는 더더욱 사귈 여유가 없었습니다. 매년 이사하는 건 참을 만한데 외로운 건 참기 힘들어요. 팀을 옮길 때마다 코치들이 그럽니다. 타격 폼을 바꿔야 한다고. 그런데 왜 못 바꾸는지 아세요? 내가 그 팀에 몇 년씩 있을 수 있으면 바꾸죠. 하지만 난 몇 경기 안에 승부를 내야 하는 선수입니다. 1군에서 몇 번 못 치면 바로 2군으로 쫓겨나니 나만의 타격 폼으로 성적을 내야 하는 절박함이 있습니다. 비록 여기저기 떠돌아다니지만 제게도 꿈이 있습니다. 내 자신에 대한 만족감을 느낄 때까지 야구를 하는 겁니다. SK에서 다시 잘리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또 다른 곳으로 가야지요.



김상수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