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면서 파삭하기로 소문난 충북 보은군의 속리산 황토 밤고구마가 본격 출하되고 있다. 해발 200m가 넘는 준고산지대 황토에서 재배되는 이 무공해 고구마는 휴가차 청남대에 내려왔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 맛에 반해 간식으로 애용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이 고구마를 재배하고 있는 보은군 탄부면 사직리 스물다섯 농가에 따르면 대통령이 청남대에 내려올 때마다 도나 군이 고구마를 구입해 선물했고 청와대측도 수시로 구입해 갔다고 한다. 현대판 진상품인 셈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국가의 절일()과 경사()에 중앙과 지방의 책임자들이 축하의 뜻으로 임금에게 토산물을 바쳤다. 초기에는 소박한 예헌()의 성격이 강했으나 차츰 세납()으로 제도화됐다. 항목도 물선() 방물() 제향() 약재() 별례() 진상으로 세분돼 있었다. 보통 지방관은 한 달에 한 번씩 진상품을 바쳤으나 조정에서 가까운 경기도는 거의 매일 바쳐야 했다. 수령과 아전들의 배달사고도 적지 않았다. 북한에는 오늘날까지 이 같은 봉건 잔재가 남아 충성의 선물반으로 불리는 진상품조()가 있고, 웅담과 산삼, 사향노루 배꼽 등이 최고 진상품으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각 지자체가 특산품으로 꼽는 품목이 거의 대부분 지난날의 진상품이다. 여주 이천 김포 쌀, 공주 미나리와 잉어, 한산 세()모시, 섬진강 은어, 제주 토종 흑()한우와 전복, 영광 굴비, 영덕 대게, 금강 참게, 지리산 복분자주와 고종시(감), 간월도 어리굴젓, 진도 홍주, 울진 고포미역, 구룡포 과메기, 순창 고추장, 변산 백합(조개), 양양 송이버섯, 행주 웅어와 하돈(황복어), 무등산 수박, 나주 배 등이 그것이다. 현재에도 명맥을 유지하는 특산품이 있고, 웅어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들도 있다. 아무튼 좋다는 특산물은 다 드신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이 겨우 44세였다니 아이러니다.
얼마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이 충북 청주시에 내려가 부적절한 술자리를 가진 뒤 대통령 가족에게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대통령 관저 창고에 쌓아두었다가 말썽을 빚은 국화베개 역시 일종의 진상품이라 하겠다. 박스떼기로 돈을 상납 받은 대통령과 그 가족들이 수두룩한 마당에 고구마와 베개 같은 진상품에는 그래도 인정이 담겨 있다. 국화베개는 매스컴을 탄 뒤 평소보다 20배나 많이 판매됐다고 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좀 더 많이 받고 있었더라면 훨씬 더 많이 팔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