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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신년맞이

Posted December. 28, 2021 08:06,   

Updated December. 28, 2021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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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에는 신년이면 망궐례라는 행사를 했다. 말 그대로 궁을 바라보고 예를 올린다는 의미다. 이슬람교도들이 시간마다 메카를 향해 기도하듯이 지방에 있는 관원들은 서울 궁궐을 향해 절을 했다. 망궐례를 하는 절기는 왕과 왕비의 생일, 한식, 단오, 추석 같은 명절, 과거 보는 날 등 꽤 여러 가지였지만 제일 중요한 절기는 역시 신년이었다.

 신년에는 서울의 궁에서도 임금이 참석하는 망궐례가 시행되었다. 이 의식에서 바라보는 궁궐은 중국에 있는 황제의 거처이다. 이것이 신년맞이 행사의 절정이었다. 조선 역대 망궐례 중 가장 우울했던 망궐례는 1637년 행사였을 것이다. 음력 기준이지만, 이날 망궐례는 차가운 남한산성에서 거행되었다. 병자호란으로 청군이 산성을 포위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명나라는 전쟁이 나기 훨씬 전부터 청이 조선을 침공하면 자신들을 도울 힘이 없다고 고백했었다. 청 태종은 산서성을 휘젓고 명군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조선에 알려 왔다. 조선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중국과 조선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 배신할 수 없다고 우겼다. 12월 20일에서 29일 사이에 산성으로 오던 근왕군은 거의 다 패해서 무너졌다. 통합작전 계획도 없이 그저 왕을 구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인접 부대와 연합작전도 거부하고 제각각 나 홀로 진군하다가 모조리 각개격파를 당했다.

 세상에 이런 전쟁이 있을까? 국제관계는 현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이념으로 대처한다. 전쟁은 군사이론과 병법을 무시하고, 감정으로 시행한다. 제일 어이없는 것은 그렇게 무참한 곤경을 겪고 나라가 망할 뻔했음에도 반성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았다는 거다. 청군이 돌아가자마자 지식인들은 “우리가 이길 수 있었는데”라고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때만 그런 게 아니다. 지금도 그런 주장이 횡행한다. 1637년의 정신은 2021년에도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