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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g 신생아 건우의 기적

Posted September. 07, 2021 08:45,   

Updated September. 07, 202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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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낳은 뒤 키울 수 있는 아이입니다. 한번 낳아 봅시다.”

 임신 24주차 임신부 이서은 씨(38·여)가 올 3월 31일 짐을 싸들고 상경해 찾아간 서울아산병원에서 들은 말이다. 그렇게도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임신 중이던 아이는 ‘자궁 내 성장 지연’이 심해 엄마 뱃속에서 커지지 않았다. 찾아가는 병원마다 “희망이 없다”고만 말했다. 당시 새벽마다 울며 잠들던 이 씨는 “낳아보자”는 정진훈 서울아산병원 교수의 손을 붙잡았다.

 아기는 원래 임신 주수보다 5주 정도 늦을 정도로 미숙했다. 하지만 첫 진료를 할 때 희망이 보였다. 아이는 작았지만 손가락만큼은 주수에 비해 긴 것이 의료진 눈에 띄었다. 정 교수는 “클 수 있는데 영양 공급이 되지 않아 작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4월 4일 이 씨의 아들 조건우 군이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24주 6일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건우의 몸무게는 288g, 키는 23.5cm였다. 통상 3kg 안팎인 다른 아기들의 10분의 1 정도였다.

 건우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의료진들은 건우를 ‘팔팔이’라고 불렀다. 건우의 출생 당시 몸무게인 ‘288’을 뒤집어 아기가 건강해지라는 마음에서 붙인 애칭이었다. 건우는 입원 중에 심정지, 장염 등을 겪었다. 폐동맥 고혈압과 미숙아 망막증을 의료진과 함께 이겨냈다. 퇴원 직전 탈장수술까지 거치고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출생 후 153일이 지난 3일 건우는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출생 4개월 정도 뒤부터는 인큐베이터를 벗어났다. 퇴원 직전에는 몸무게가 2kg을 넘어섰다. 건우의 주치의였던 김애란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건우가 잘 버텨줘서 넘긴 고비가 여러 번”이라며 “작은 아기들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줘 너무나도 고맙다”고 말했다. 건우는 생존한 국내 초미숙아(400g 미만으로 태어난 아기) 중 가장 작은 아기가 됐다.

 건우의 생존에는 의료진 뿐 아니라 부모의 수고도 적지 않았다. 어머니 이 씨와 아버지 조필제 씨(39)는 건우에게 모유를 전달하러 일주일에 두 번씩 고향인 경남 함안에서 왕복 700km 거리를 오갔다. 새벽 3시 조 씨가 운전대를 잡고 출발해 차 안에서 이 씨가 젖을 짜냈다. 부모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에 퇴원 전까지 건우를 출산 직후 딱 한 번 봤다.

 퇴원 이후에도 건우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건우는 아직 하루에 여덟 번 이른둥이를 위한 특수 처리가 된 우유를 먹어야 한다. 그 사이에 약도 챙겨 먹어야 한다. 어머니 이 씨는 “건우가 처음에는 저를 낯설어하더니 이제는 손가락을 꽉 잡고 우유를 먹는다”며 “기적을 만들어 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지윤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