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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준비

Posted March. 22, 2021 08:26,   

Updated March. 22, 2021 08:26

日本語

“나는 길 끝까지 왔어요. 해도 졌지요.

그래도 우울한 방에서 장례 지내지 마세요.

울지 마세요. 내 영혼은 자유를 얻었어요.

조금은 날 그리워해줘요. 너무 오래는 말고요.”

  ―‘날 그리워해줘요, 하지만 보내줘요’ 중에서

 2년 전 캐나다에서 근무할 때 일이다. 한국전 참전용사 빌 블랙 할아버지의 부인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빌은 열여덟에 자원입대하여 한국전에 참전했고, 고향에 돌아와 부인을 만나 60년 넘게 해로하여 왔다. 빌과 부인은 아흔 가까운 고령이었지만 늘 활기찼고 유머를 즐겨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노부부였다. 어느 날 부인이 넘어져 대퇴부 골절로 입원하였다는 소식에 병문안을 다녀왔다. 그러고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부고를 받은 것이다. 장례예배 후에 빌에게 위로를 전하는데, 빌이 책갈피 같은 것을 하나 주었다. 거기에는 부인의 사진과 함께 ‘날 그리워해줘요, 하지만 보내줘요(Miss Me But Let Me Go)’라는 시가 적혀 있었다. 부인께서 준비해둔 거라고 한다. 장례식에 쓸 꽃과 음식, 음악과 전시할 사진까지 부인이 일일이 정해두고 가셨다 한다. 수많은 장례식에 참석해 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죽음을 대하는 그 차분함과 의연함이 놀라웠다. 혼자 남아 장례를 준비해야 할 남편이 애잔해서 그랬을까.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책갈피에 적힌 시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영미 권에서는 꽤 알려진 시라 하는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가까운 이들에게 마지막 남기는 인사다. 잊혀질까 아쉬운 마음에 나를 그리워해 주기를 바라면서도, 남은 사람들이 아픔에 멍들지 않도록 너무 오래 담아 두지는 말라는…. 진솔하면서도 깊은 사랑이 오래 가슴에 남았다. 한국전 참전용사들도 이제는 연로하여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 빌의 건강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