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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흐르는 당현천...그곳에 가면 ‘DJ’가 있다

음악 흐르는 당현천...그곳에 가면 ‘DJ’가 있다

Posted October. 23, 2020 09:14,   

Updated October. 23, 202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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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는 좋은 음악을 혼자 듣는 게 미안해서 라디오 DJ에 도전했다고 하는데요, 저도 노원 주민 여러분과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음악을 공유하면서 그 사이사이 여러분과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고 싶어요.”

 21일 오후 서울 노원구 당현천. 시계가 오후 6시 정각을 가리키자 천변 산책로 어디선가 여성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이어 가수 이문세의 노래 ‘가을이 오면’이 흘러나오자 한 남성이 들여다보던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느긋하게 산책로를 걸었다.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토요일 노원구 당현천과 경춘선 숲길에서는 이처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원음악방송’을 들으며 산책을 하거나 운동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올 4월 27일 시작해 6개월에 접어든 이 방송은 주민 힐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노원구에서 운영하고 있다.

 윤정록 노원마을미디어지원센터장은 “지난해 봄 축제 때 당현천에서 한시적으로 라디오 야외 공개 방송을 진행했는데, 주민들이 사연을 보내는 등 반응이 좋았다”며 “이를 계기로 방송을 상설화하게 됐다”고 말했다.

 노원음악방송은 낮 12시∼오후 4시 주간 음악 방송과 오후 6∼8시 야간 DJ 방송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주간 방송에서는 트로트, 발라드,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이어지고, 야간 방송에서는 DJ가 방송을 진행하며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곡 신청을 받는다. 노원구에 따르면 그동안 접수된 신청곡 2100건 가운데 가장 인기 있었던 장르는 대중가요로 1340건(63.8%)이었다. 그 다음은 트로트(600건·28.6%)였다. 이날도 채팅방에는 160여 명이 접속해 포레스텔라의 ‘보헤미안 랩소디’, 이찬원의 ‘사랑이야’ 등의 노래를 신청했다. 주민 이경애 씨(74·여)는 “거의 매일 저녁 당현천에 나오는데 음악이 아예 나오지 않던 때보다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며 “트로트가 나올 때 특히 반갑다”고 말했다.

 채팅방에 신청곡과 함께 올라오는 100자 안팎의 사연에서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 동네에 대한 애정 등이 묻어난다. 그동안 접수된 사연 가운데 가수 김호중의 ‘고맙소’를 신청한 한 주민은 “와이프가 좋아하는 노래를 신청한다”며 “와이프 이름은 ○○○다. 호명해 주면 고맙겠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남겼다. 또 다른 주민은 “가족들과 당현천 산책 중인데 너무 예쁜 꽃들과 함께하니 좋다. 노원구민이라 찐으로 좋다”며 가수 영탁의 ‘찐이야’를 신청했다.

 매주 월∼수요일 DJ를 맡고 있는 박아희 씨는 “올라오는 사연을 보면 마음이 훈훈해질 때가 많다”며 “채팅방에서 직접 주민들과 소통하다 보니 주민과 함께 방송을 만들어가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노원음악방송에 대한 주민들의 호응도가 높아진 배경에는 방송의 질을 높이려는 노원구의 노력도 숨어 있다. 방송은 재난방송용 스피커를 통해 송출되는데, 지난해 노후화된 스피커를 교체할 당시 예산을 좀 더 들여 음질이 나은 것으로 마련했다. 8명의 지원자 가운데 선발된 프리랜서 DJ 2명은 첫 방송 시작 두 달 전부터 리허설 방송을 진행해 녹음하고 모니터링을 하는 등 훈련 과정을 거쳤다. 본격적인 방송이 시작된 뒤에는 담당 공무원이 수시로 산책로를 오가며 주민들의 민원을 토대로 소리 크기를 조정했다.

 노원구 관계자는 “최근 당현천의 낡은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도 재정비하고 바닥분수와 음악분수, 화단도 조성했다”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지친 주민들이 당현천에서 산책하면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하경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