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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 협주곡에 어른거리는 유령의 그림자

Posted October. 06, 2020 07:52,   

Updated October. 06, 2020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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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백건우와 슈만’ 콘서트 프로그램 마지막 곡은 슈만의 ‘유령 변주곡’입니다. 이 곡의 주제는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 선율과 비슷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왜 이런 제목이 붙었을까요. 여기엔 으스스한 두 겹의 유령 얘기가 숨어 있습니다.

 슈만은 마흔세 살이던 1853년, 친한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을 위해 바이올린 협주곡을 씁니다. 슈만은 젊은 시절부터 환각을 보는 등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었는데 이즈음부터 상태가 악화됩니다. 해가 지나 1854년이 되자 ‘천사가 내 귀에 음악 선율을 불러준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는 훨씬 전에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나, 역시 죽고 없는 친구 멘델스존의 유령이 음악을 불러준다고도 했습니다.

 슈만은 천사나 슈베르트, 멘델스존이 자기한테 불러주었다는 선율을 옮겨 적고 그 선율을 주제로 변주곡을 씁니다. 오늘날 유령 변주곡으로 불리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유령이 불러준 선율이라고 말한 이 선율은 이미 그 전해에 자기가 바이올린 협주곡에 넣었던 선율이었습니다. 그것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슈만은 상태가 심각했던 것입니다.

 몹시 추운 1854년 2월 27일, 슈만은 집을 나가 근처에 있는 라인강에 뛰어들었습니다. 다행히 그곳을 지나던 어부들이 슈만을 건져 올렸습니다. 슈만은 본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요아힘은 이 곡이 슈만의 정신이 이상해진 뒤의 작품이므로 정상적이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슈만의 부인 클라라에게도 이 곡을 발표하지 말자고 권했습니다. 클라라는 충고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80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1933년, 바이올리니스트 옐리 다라니와 그 언니가 런던에서 열린 교령회(交靈會·seance)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오늘날 ‘분신사바’ 놀이처럼 사람들이 모여 명상하는 분위기에서 손을 움직이다 보면 유령이 불러주는 글자를 짚게 된다는 신비주의적 모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자매가 짚은 글자가 이상한 메시지를 만들어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찾아내라.’ 작곡가가 누구인지 물으니까 ‘로베르트 슈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경악했습니다.

 며칠 뒤 다시 교령회가 열렸고, 유령은 자기가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이라며 슈만의 협주곡 악보는 베를린의 도서관에 있다고 알렸다고 합니다. 메시지를 받았다는 바이올리니스트 자매는 요아힘의 조카손녀였습니다. 교령회를 주최한 사람이 베를린의 도서관에서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 악보를 찾아냈습니다. 이렇게 이 곡은 작곡된 지 80년 지나 세상에 나왔습니다.

 실제로 유령이 이 곡의 존재를 알려주었을까요.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크리스토프 에센바흐는 ‘기획된 발견’일 거라고 말합니다. 다라니 자매는 이런 곡이 베를린의 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떠들썩한 이벤트로 관심을 집중시키려 했다는 설명입니다. 진실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문제겠습니다.

 한편 슈만의 건강이 악화될 즈음 슈만 집을 찾아가 그 가족과 교분을 맺었던 브람스도 슈만의 유령 주제를 따서 네 손을 위한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작품 23을 썼습니다. 이 곡은 슈만 부부의 셋째 딸인 율리에게 헌정됐습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