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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슬픈 과부

Posted August. 26, 2020 09:47,   

Updated August. 26, 202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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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에 국권을 상실한 조선은 슬프고 외롭고 비참했다. 스코틀랜드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눈에 비친 모습은 그러했다. 그가 한국에 온 것은 1919년 3월 28일이었다. 3·1운동으로 한국인들이 무자비한 탄압을 받을 때였다. 그는 한국인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평화롭게 만세를 불렀을 뿐인데도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노골적인 모욕에 속수무책인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일본 경찰은 한국 남자들의 흰옷에 잉크를 뿌렸다. 한글을 금지한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적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한 치졸한 짓이었다. 화가인 그는 외로운 한국인들에게 “세상의 따뜻한 눈길이 머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고난의 현장을 그릴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추방당할 것이었다. 한국인 밀정이 어디를 가든 그를 따라다녔다. 그가 1946년에 펴낸 ‘올드 코리아’에 수록된 그림들이 말해주듯 한국인들의 옷, 집, 풍습, 문화의 아름다움이 주된 소재가 된 것은 그래서였다.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그릴 뿐이었다.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데 ‘과부’라는 제목의 그림만은 예외였다. 얼핏 보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한국인의 고난을 상징하는 그림이었다. 그림 속의 여인은 남편과 사별한 과부였다. 남편의 죽음은 틀림없이 3·1운동과 관련이 있었다. 여인 스스로가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다가 막 풀려난 상태였다. 그런데 여인이 슬퍼하는 건 남편 때문만이 아니었다.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다시 볼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외아들 때문이기도 했다. 여인의 얼굴 표정은 충격이 너무 큰 탓인지 의외로 평온해 보인다. 그래서 더 슬프다. 키스는 이 그림에서 식민지의 심리적 현실을 기막히게 포착했다. 그림은 이중 삼중의 슬픔과 고난에도 맘껏 울 수 없었던 식민지인들의 심리적 현실을 지금도 증언한다. 은유적 의미에서 보면, 나라를 잃은 조선인들 모두가 그림 속의 슬픈 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