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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종주국 일서도 인정받은 ‘미생’

Posted September. 18, 2017 08:15,   

Updated September. 18, 201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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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전 첫 해외여행으로 일본에 왔을 때 마쓰모토 다이요(松本大洋)의 만화를 보고 충격을 받아 일본어도 모르면서 ‘철근 콘크리트’ ‘핑퐁’ 등 그의 작품을 산더미처럼 사 갔습니다. 그런 작가와 함께 상을 받는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15일 일본 도쿄(東京) 오페라시티에서 만난 윤태호 작가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미생’으로 이날 일본 문화청이 주최하는 ‘미디어 예술제’ 만화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올해 20회를 맞는 이 행사 만화 부문에서 한국인이 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번역을 맡은 후루카와 아야코(古川綾子) 씨와 한국서적 전문출판사 쿠온의 김승복 대표도 함께 수상했다.

 수상보다 더 윤 작가를 흥분시킨 것은 오랜 우상이었던 마쓰모토 작가를 만난 것이었다. 그는 e메일 주소가 ‘taio69’일 정도로 마쓰모토 작가를 흠모해 왔다고 한다. 마쓰모토 작가도 이번에 우수상을 받았다.

 윤 작가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한국이 웹툰 종주국이 됐지만 제 세대 만화가들에게 일본 만화는 동경의 대상”이라며 “오토모 가쓰히로의 ‘아키라’는 내 만화 연출 방식에 큰 영향을 줬다. 마쓰모토는 따라갈 수 없는 지점을 보여줘 좌절을 안겨줬다”고 돌이켰다.

 시상식을 마친 윤 작가는 마쓰모토 작가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둘은 바둑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마쓰모토 작가는 “프로기사 이세돌의 열혈 팬이라 지난해 알파고에 패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미생을 꼭 읽어보겠다. 언제든 e메일로 연락을 달라”고 말했다. 한국만화가협회장인 윤 작가는 그를 국제만화가대회(ICC)에 초청했다.

 지난해 일본에서 번역 출판된 미생은 심사 과정에서 ‘한국적이면서도 일본 청년들에게 시사점이 많은 작품이다’, ‘구성력이 뛰어나다’는 등의 극찬을 받았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인 만화가 이누키 가나코(犬木加奈子) 씨는 시상식 후 윤 작가를 찾아 “한국 드라마를 보고 인상 깊었던 차에 후보작으로 올라와 주저 없이 높은 점수를 줬다”고 말했다. 미생은 일본에선 지난해 후지TV에서 리메이크 드라마로 제작돼 황금시간대에 방영됐다.

 윤 작가는 “처음에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양국 상황이 다른데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스스로 잘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계기로 받아들이는 것 같더라. 요미우리신문 논평도 나왔다”고 말했다. 다만 바둑 용어는 한일 간 차이가 많아 번역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미생이라는 단어도 일본에서 안 쓰다 보니 제목을 바꾸자는 얘기도 나왔는데 제가 고집을 피웠다”며 웃었다.

 윤 작가는 16일에는 고서점가인 도쿄의 간다진보(神田神保)정 한국 서적 전문 북카페 ‘책거리’에서 일본 팬들을 만났다. 선착순으로 신청한 팬 50여 명이 발 디딜 틈 없이 카페를 메웠다. 윤 작가는 만화가가 되기까지의 고생담, 미생을 그리게 된 이유, 한국의 웹툰 문화 등에 대해 설명했다.

 팬들은 ‘만화가가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미생에서 워킹맘의 비애를 실감나게 그렸는데 모델이 있었나’는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작가도 기억하지 못하는 대사를 줄줄 외우는 팬,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팬도 있었다. 이들의 열성에 감동한 윤 작가는 어깨와 팔꿈치가 좋지 않지만 예정에 없던 사인회를 강행했다.



장원재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