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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말만 믿고 특성화고 왔는데고졸 채용 확 줄인다

정부 말만 믿고 특성화고 왔는데고졸 채용 확 줄인다

Posted December. 23, 2013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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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초 대기업 A사와 학생 채용 우대에 관한 협약을 맺고 마이스터고 인가를 받은 서울 B고는 올해 10월 A사로부터 절망스러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시간선택제 일자리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으로 일자리 여력이 없어 약속했던 최소한의 채용 인원을 보장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학교 측은 정권이 교체된 뒤 고졸 채용에 대한 기업들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며 항의나 질의를 하고 싶어도 당시 협약을 맺었던 담당자들이 대부분 자리를 옮겨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011년 말 본격화된 고졸 채용 훈풍이 불과 2년 만에 사그라지는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경쟁적으로 고졸 채용 인원을 늘려온 공공기관과 기업, 금융권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고졸 채용 규모를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

295개 공공기관이 최근 정부에 제출한 2014년 고졸 채용 인원은 1933명으로 올해 2512명, 지난해 2508명에 비해 크게 줄었다. 전임 정부가 지난해 11월 공공기관 채용의 20% 이상을 고졸자로 뽑고 비중을 차차 늘려 2016년까지 40%를 채우겠다고 약속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고졸 출신을 대거 채용해 화제가 됐던 은행과 증권업계도 1년 만에 고졸 채용 인원을 절반으로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715명을 뽑았던 은행들은 올해 491명만을 뽑았고, 지난해 162명을 뽑았던 증권사들 역시 올해 채용 인원이 88명에 그쳤다. 금융계 관계자는 시간선택제 바람 등으로 내년에는 고졸 채용 인원이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내년 고졸 채용 규모도 불투명하긴 마찬가지다. 고졸 채용 바람이 불기 이전부터 뽑아왔던 생산직 인력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정부 방침을 따르고자 2011년 이후 뽑은 서비스직, 사무직은 규모를 줄이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그룹 인사팀에 문의한 결과 2011년 이후 많게는 연간 두 배씩 늘려오던 고졸 채용 인원을 내년에는 줄이거나 올해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관계자는 경기 불황으로 내년에 채용 인력을 크게 늘릴 여력이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며 생산라인에 배치되는 95%를 제외한 나머지 고졸 인력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채용을 전제로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고졸 인턴 채용 제도를 운영해 온 한화그룹 역시 지난해에 비해 올해 채용 인원을 소폭 줄일 예정이다.

2년 만에 급격하게 냉랭해진 분위기에 실업계고 및 마이스터고들은 당황하는 분위기다. 김혜선 경기상고 취업특성화부 교사는 고졸 취업난은 이미 올해 졸업생들부터 겪고 있는 일이라며 작년이었으면 어렵지 않게 취업했을 상위권 학생들도 줄줄이 취업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취업률 100%를 달성한 미림여자정보과학고도 올해 3학년의 취업률이 90%에 그쳤다.

불안감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꼭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취업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정부의 말만 믿고 마이스터고나 실업계고에 진학한 학생들은 속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금융특화 고교인 서울금융고 3학년 학생회장 장석원 군(19)은 내신 성적 상위 10% 선에 펀드투자상담사, 전산회계 2급, 전산회계운용사 자격증도 땄는데 올해 지원한 공기업과 증권사 등 4곳에서 모두 탈락했다며 선생님들이 작년이 고졸 채용의 피크였고 앞으로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해 정말 당황스럽다고 했다.

실업계 C고 2학년 학부모회장을 맡고 있는 강모 씨는 정부가 특성화고 출신들을 많이 뽑겠다고 거듭 약속해 아이를 중학교 3학년 때 실업계고로 진학시켰는데 이제 와서 말을 바꾸면 어쩌자는 것인지 불안해 미칠 지경이라고 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