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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맞닿은 눈부신 순백의 살결에 취해

하늘에 맞닿은 눈부신 순백의 살결에 취해

Posted January. 18, 2008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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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핀 태백산과 거기서 펼치는 눈 축제

토요일 오전 2시 9분. 깊은 잠에 빠진 고원도시 태백이 깨어난다. 막 도착한 임시 열차가 토해낸 등산객 때문이다. 역 앞 해장국집은 벌써 불을 밝혔다. 후루룩. 밤샘 여행으로 허전한 속을 해장국 한 사발로 달랜다. 등산화 끈을 조이고 택시를 부른다. 찾을 곳은 유일사 입구. 태백산 등산로의 초입이다. 오전 4시. 세상은 여전히 암흑천지지만 하늘의 별빛만큼은 총총하다.

첫새벽에 오르는 설산 태백의 정상. 한밤에 산을 오름이란 자연과 하나 됨을 뜻한다. 한밤중 눈 위에서 부서지는 별빛 본 적 있으신지, 한겨울 달빛에 비친 임의 얼굴이 얼마나 고운지 아시는지. 마른 가지에 걸린 별과 달이 어찌 그리 애처로운지 혹시 느껴보셨는지. 바람은 소리가 되어 다가오고 어둠은 빛이 되어 다가오는 한겨울 첫새벽의 태백산. 제아무리 느림보여도 두 시간이면 정상에 닿는다. 그즈음 동녘은 여명으로 충만하고 눈에 덮여 수빙()으로 모습 바꾼 주목 숲 위로 찬란한 아침 해살은 빛난다.

산을 내려와 다다른 당골광장. 25일부터는 눈 세상으로 변한다. 태백산 눈 축제가 열리는 덕분이다. 크고 작은 눈 조각으로 뒤덮일 이곳. 올해는 삿포로 유키마쓰리의 세계 눈 조각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김동률 씨 등 여러 사람의 작품으로 장식될 터이다. 태백산 눈 축제는 어른만의 행사가 아니다. 얼음 썰매장과 얼음 터널, 사륜구동 오토바이로 끄는 스노 트레인, 시베리안 허스키가 끄는 개 썰매 등등 어린이를 위한 행사도 많다.

그러나 단연 인기는 비료포대 슬로프에서 미끄럼 타기다. 아기공룡 둘리 눈 조각상 내부에는 이글루 카페도 있다. 얼음과 눈으로 지은 카페 안에서 마시는 따끈한 차 한 잔.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에 충분하다. 앉은뱅이 썰매를 타는 겨울놀이마당, 쥐포 쫀드기 가래떡을 굽는 추억의 구워먹기 마당은 어른들 몫이다. 아련한 옛 추억을 되새길 모처럼의 기회니 놓치지 마시기를.

축제 때는 시내 전체가 축제장으로 변한다. 꽁꽁 얼어붙은 시내 하천(여성회관 앞 태붐얼음썰매장)에서는 아이스 레일바이크와 튜브 트레인, 썰매는 물론 가족 컬링대회를 즐긴다. 황지(연못)공원은 얼음으로 조각한 세계의 탑이 루체비스타와 어울려 환상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최대한 얇은 옷차림으로 뛰는 알몸 마라톤(27일 태백종합경기장)도 있다.

백두대간 깊은 산속 깃든 한강 낙동강 발원지 옹달샘 찾기

백두대간 태백산(1567m)의 신령함은 반도의 생명수라 할 삼강을 발원시킴으로써 더욱 빛이 난다. 삼강이란 한강과 낙동강, 오십천으로 각각 서해와 남해, 동해로 흘러들며 이 땅의 사람과 역사를 키워낸 반도의 젖줄이다. 이 세 큰물이 이 땅을 적시며 첫 흐름을 시작하는 곳은 삼수령 아래의 산기슭. 낙동강 발원지인 너덜샘은 싸리재(강원 정선군과 태백시 경계의 백두대간 고개)에,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는 대간마루 금대봉(1418m) 아래 해발 900m의 산속(태백시 창죽동)에 있다.

이 두 샘물은 태백 여행길에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너덜 샘은 정선과 태백을 잇는 국도 38호선의 옛길 싸리재의 태백 쪽 중턱(태백시 화전동)에 있어 자동차를 타고도 찾아갈 수 있다. 산기슭의 원천은 보호 중인 데다 등산로마저 없다. 그래서 고갯길 중턱에 음수대(주차 공간 확보)를 마련하고 파이프로 공급 중이다.

금대봉 아래 검룡소는 일정한 수온(섭씨 9도)으로 땅속 바위구멍에서 하루 2000L나 흘러나와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신비한 샘. 주차장에서 40분 정도 거리인데 길도 평탄하고 눈 내린 풍광도 아름다워 가족 단위 트레킹 코스로 그만이다. 삼수령은 태백 시내에서 검룡소로 가는 경우라면 따로 찾지 않아도 된다. 도중에 넘게 되는 피재(920m)가 바로 삼수령이다.

자동차로 오르는 백두대간 고갯길, 만항재

대간이란 특별하다. 삼강의 원류를 두루 품을 정도로 반도 지형의 대강을 아우르는 큰형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도 최고()의 고갯길이 대간에 자리 잡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 해발 1330m의 만항재를 이름이다.

태백과 영월, 정선 세 고을의 경계선에 자리 잡은 이 고개. 그래서 세 곳 어디서든 차로 오를 수 있다. 그 만항재에 올라보라. 태백산을 비롯한 대간과 주변의 뭍 산과 계곡이 내 발 아래 놓이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예서 대간 줄기를 타고 오르면 곧 함백산 정상이다. 함백산은 정상 바로 밑까지 도로가 놓여 눈만 없다면 차로 오를 수 있다. 만항재는 눈에 덮이면 통행이 통제되니 미리 확인하고 떠나기를 권한다.

승부역은 오지() 역의 대명사다. 태백과 맞닿은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산골짝, 낙동강 상류 물가에 있다. 태백 고지대에서 비롯된 만큼 상류의 낙동강은 그 흐름이 급하고 세다. 태백 구문소에 난 바위구멍이 그 증거다. 그 물살로 상류 봉화의 심산에는 협곡이 형성됐다. 그런데 그 협곡의 물가로 철길이 났다. 625전쟁 직후 석탄 수송로로 개통한 영암선(철암영주)이다.

승부역은 영암선의 한 역이다. 협곡 벼랑 가에 놓인 철길, 그 옆 좁은 땅에 옹색하게 들어선 역사. 몇 해 전만 해도 역 앞의 낙동강은 흔들 다리로 건너야 했다.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이 글은 승부역이 깃든 협곡의 바위 벽에 한 역무원이 남긴 시다. 역사위로 펼쳐진 하늘, 그 역에 어렵사리 일군 꽃밭의 옹색함을 표현한 이 짧은 글. 오지 역무원의 푸념이 이렇듯 아름다운 시로 태어난 것은 그가 이곳에서 순수한 자연을 닮아간 덕분이리라.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승부역 찾아보기

승부역은 이용하는 승객이 거의 없다. 오가는 객차도 하루 8편(주말 10편)뿐, 정차도 상하행 각각 한 편뿐이다. 역무원은 세 사람이 있지만 근무는 늘 혼자다. 이곳에는 대중 교통편도 없어 역무원은 열차로 출퇴근한다. 온종일 사람 한 명 만날 수 없는 곳. 그래서 더더욱 겨울이 기다려진다. 12월 말부터 다음 해 2월 중순까지는 환상선 눈꽃열차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환상선 눈꽃열차는 서울을 출발해 태백과 승부를 거쳐 풍기를 경유해 되돌아가는 환상형 코스의 관광열차(주말에만 운행)다. 오전 7시 40분 서울 영등포역을 출발해 국내에서 가장 높은 추전역(태백시)을 거쳐 오후 1시 42분 이 승부역에 들어온다. 열차가 오는 날, 승부리 주민은 역사 주변에 먹을거리 장을 편다. 그러면 승객들은 육개장이며 메밀전에 막걸리로 점심을 들고 오지 역의 자연을 둘러본다. 열차는 풍기역(인삼시장 장보기)을 들러 오후 9시 30분에 영등포역에 도착한다.

이런 승부역이 최근에는 트레킹 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트레킹 구간은 석포역에서 승부역까지 7.4km. 낙동강 물줄기를 옆에 끼고 두 시간쯤 한가로이 걷는 오지마을 코스로 험하지도 않고, 통행 차량도 없어 인기가 높다. 승부역을 찾은 트레커에게 최고 인기는 하늘도 세 평이라고 쓰인 곳에서 기념촬영하기. 영암선 개통비도 꼭 찾아보자. 이 철도가 얼마나 힘들게 건설됐는지, 휴전 후 어렵던 시기에 얼마나 중요한 철도였는지를 알리는 글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이름과 함께 적혀 있다.



조성하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