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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양된 자와 남은 자 긴 고통의 세월은 닮았다

해외입양된 자와 남은 자 긴 고통의 세월은 닮았다

Posted August. 20, 200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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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이 돼 가정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가정이 없어도 모국을 택할 것인가.

19일 오후 3시 서울 건국대 새천년관 스카이라운지. 두 한국 남자가 나누는 대화에 50여 명의 입양인 방청객은 눈을 떼지 못했다.

해외입양인연대(GOAL)에서 주최한 제6차 콘퍼런스의 워크숍 중 하나인 입양과 아동시설 사이, 두 사람의 삶 이야기.

김홍일(40) 씨는 8세 때 보육원에 들어간 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박현민(미국명 코디 윈터37) 씨는 보육원에서 자라다 11세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입양과 보육원 잔류로 갈라진 두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김 씨는 내가 보육원에 맡겨지지 않고 입양됐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김 씨의 누나 두 명은 파출부가 됐고 동생 두 명은 미국으로 입양됐다.

김 씨는 지금도 보육원에서의 힘들었던 생활에 대해 종종 악몽을 꾼다. 그는 하루라도 선배에게 매 맞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끼니는 고구마로 때웠다며 그때마다 입양 간 동생이 부러웠다고 회상했다.

이에 대해 박 씨는 입양이 되면 가정이 생기지만 외국에서 자라면서 겪는 인종차별에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 시애틀로 입양 간 박 씨는 중고교 시절 언제나 누군가에게 자신의 출신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무시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과 같이 미국인 부모에게 입양된 한국인 동생과 꼭 한국에 돌아가자는 약속을 했고 1988년 처음 한국 땅을 밟는 순간 그 결심을 굳혔다.

그는 모국의 정취에 이끌려 한국에 들어왔고 2001년 귀화했다.

대화를 마치며 김 씨는 입양인도 깊은 마음의 상처를 가지겠지만 따뜻한 가정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박 씨는 내가 이 나라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GOAL 김대원(스위스명 웽게라) 사무총장은 많은 입양인은 자신이 한국에서 자랐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현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의 처지에 감사하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19, 20일 이틀에 걸쳐 열리는 이번 콘퍼런스에서는 입양인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20일에는 한국인과의 연애, 결혼, 영어교사 외 한국 내 취업, 성공적인 친가족과의 상봉 등을 주제로 워크숍이 열린다.



동정민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