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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렌지 혁명

Posted December. 06, 200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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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름치고는 예쁘기도 하다. 처음 세계 언론엔 우크라이나 사태로 알려진 대통령 부정선거 규탄 시위였다. 오렌지빛이 야당의 상징색으로 등장한 건 2년 전.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후보 측은 포스터를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 오렌지색으로 테두리를 둘렀다. 이번 대선 땐 유세장은 물론 식당 택시까지 오렌지색으로 장식됐다. 당의 상징인 꿀과 벌을 뜻한다, 혁명의 붉은색보다 평화롭다는 등 설명도 다양했다.

오렌지 혁명의 여신이라 불리는 율리야 티모셴코도 등장했다. 오렌지 군대를 만들어 승리를 거둡시다. 유셴코 후보의 측근인 그는 낭랑한 목소리로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재선거 결정을 이끌어낸 지금, 오렌지색은 시위대 깃발뿐 아니라 젊은이들의 티셔츠부터 밍크코트 입은 여성들의 스카프까지 최고의 팬시상품으로 떠올랐다. 오렌지 혁명이 중산층까지 파고든 것을 보여 주는 문화현상이다. 억압과 규제, 부패와 낙하산 인사의 구체제는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다는 변화의 상징도 된다.

우크라이나는 우리나라처럼 슬픈 지정학적 운명을 짊어진 나라다. 바로 옆 러시아 입장에선 아무리 유라시아의 강대국이고 싶어도 우크라이나를 손에 넣지 않는 한, 유럽으로 뻗어갈 수 없다. 아시아에 쭈그리고 앉아 중국과 중앙아시아 패권 다툼이나 벌여야 한다. 반면 이 나라만 고분고분해지면 동부 우크라이나의 엄청난 자원은 물론 동유럽까지 넘볼 수 있다. 러시아의 이런 속셈을 유럽과 미국이 모를 리 없다. 이라크전쟁을 놓고 대립각을 세워 온 미국과 유럽이 모처럼 한목소리로 우크라이나 야당을 지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재선거가 평화적으로 치러져 오렌지 혁명이 성공한다면 우크라이나엔 서구화 개방화의 길이 열릴 수 있다. 반면 러시아의 야망은 타격을 받고, 유럽연합(EU)의 소프트파워 제국과 미국의 군사제국은 서로의 필요성을 인정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모른다. 오렌지 혁명을 반대하는 동시에 친()러시아적, 친여당적인 동부 우크라이나야말로 이 나라 경제를 책임져 온 곳이기 때문이다. 강대국 사이에 낀 소국()은 아무리 스스로는 자주국가라고 믿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음을 우크라이나의 현실이 말해주고 있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