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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상고

Posted December. 20, 2002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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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승세가 굳어가던 19일 밤 부산상고 교정에는 노년의 동창들까지 나와 개표방송을 지켜보며 동문의 승리를 축하했다. 부산상고 출신으로 민국당에 참여했던 이기택 신상우 전 의원은 박찬종 김광일씨 등 다른 민국당 멤버들과는 달리 이번 대선에서 노 당선자의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목포상고, 차기 대통령은 부산상고 출신이고 예비 퍼스트레이디 권양숙 여사는 계성여상 3학년을 중퇴했다. 최종영 대법원장은 강릉상고, 이종남 감사원장은 덕수상고 출신이다. 상고 출신이 3부 요직을 이렇게 많이 차지하기는 건국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은행 창구직원들도 전문대 출신이 주류를 이루지만 지점장급에는 아직 상고 출신이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60, 70년대 상고생들의 책가방 옆구리에는 반드시 주판이 끼어 있어 인문고 공고 학생들의 책가방과는 구분됐다. 옛날 상고를 졸업한 동창생들이 만나면 지금도 주산을 잘하던 동창생을 놓기를이라고 부르며 놀린다고 한다. 주판으로 가감산을 할 때 교사가 낭랑한 목소리로 놓기를 하면 학생들이 주판 위에 손을 올려놓고 준비 상태에 들어갔다. 놓기를은 (셈을) 놓다에서 나온 준비 구령이다. 컴퓨터 계산기가 보편화하면서 상고를 상징하던 주판은 실을 뽑는 물레처럼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노 당선자가 부산상고에 다니던 60년대 중반은 버젓한 직장이 별로 없었던 시절이다. 은행은 당시 신부감이 줄을 서는 최고의 직장이었다. 상고를 졸업해 은행에 취직하면 동네에서 돼지를 잡아 잔치를 벌여주었다. 자전()에 따르면 노 당선자는 상고를 졸업한 뒤 은행원이 되기를 꿈꾸었으나 고교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방황을 하면서 공부를 게을리 해 농협 취직 시험에 떨어져 은행원의 꿈을 접었다. 은행에 들어가 은행원 생활에 안분자족했더라면 오늘의 노무현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실업계 고교의 인기가 떨어져 상고들이 미달사태를 빚으면서 옛날 명문 상고들이 앞다투어 인문고로 전환하고 있다. 일부 남아 있는 상고들도 정보산업고로 바뀌어 주산 대신에 컴퓨터를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1920년에 설립된 목포상고는 작년에 인문고로 전환하면서 교명을 전남제일고로 변경했다. 107년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상고도 동창들을 중심으로 인문고 전환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학벌시대가 부른 상고의 쇠퇴 현상이다. 모쪼록 상고 출신 대통령당선자와 여상 출신 예비 퍼스트레이디가 학벌 때문에 좌절하고 상처를 입기 쉬운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