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號 긴급진단-3]"살리려면 돈을 풀어라"

  • 입력 2001년 10월 6일 18시 36분


요즘 반도체 업계는 생산원가의 40% 이하 가격에 D램을 팔아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에 몰려있다. 이미 많은 업체들이 감산체제에 돌입했지만 정보기술(IT) 수요 부족으로 D램 가격은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하이닉스의 반덤핑제소를 추진하는 등 세계 반도체업체들이 ‘하이닉스 고사(枯死)작전’에 나선 것도 시장상황이 워낙 좋지 않기 때문.

하이닉스가 회생하기 위해서는 ‘최악의 경기’와 ‘적들의 공격’이라는 두 개의 벽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투자자금을 과감하게 신규 지원해 하이닉스의 ‘체력’을 기르게 한 뒤 외부의 통상압력을 스스로 이겨내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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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경쟁력, 갈수록 악화〓D램 업계 제조기술의 핵심은 ‘회로선폭 좁히기(미세화 공정)’다. 회로의 선폭(너비)이 좁아야 웨이퍼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늘려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다. 현재 선발업체인 마이크론과 삼성전자는 0.15∼0.16㎛(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공정으로 D램을 생산하고 있으며 내년까지는 0.12∼0.13㎛ 공정으로 교체할 계획이다. 일본과 대만업체들도 대부분 0.15∼0.16㎛ 공정 단계에 와 있다.

하지만 하이닉스는 아직도 0.18㎛ 수준에 머물러 있다. 0.15㎛ 공정과 비교하면 생산원가가 30% 정도 비싸다. 신규투자가 어렵다면 내년에는 선발업체보다 두배 가량 높은 원가부담을 져야 한다.

채권단의 신규자금 지원이 없이는 장기적 생존이 불가능한 이유다. 메리츠증권 최석포 연구위원은 “계속되는 채권단의 땜질처방은 죽어 가는 환자에게 모르핀을 주사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하이닉스가 기술경쟁력을 회복해 장기적으로 생존하려면 내년까지 1조원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채권단의 과감한 신규자금 지원 없이는 금융권과 하이닉스가 공멸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부채탕감 없이는 회생 불가능〓반도체 애널리스트들은 하이닉스의 128메가SD램 총원가를 3.5달러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현물시장가는 1.1달러대. 하이닉스가 생산하는 반도체 중 D램은 65∼70%나 된다. 문제는 총원가의 20%에 달하는 이자비용. 매년 1조원이 넘는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면 업계 전망대로 내년 3·4분기 이후에 반도체 가격이 크게 오른다고 가정해도 적자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부채탕감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반도체 애널리스트는 “현 상태로 어차피 받지 못할 부채라면 채권단은 부채의 절반 이상을 탕감해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고 나중에 경쟁력이 회복되면 잔여부채를 회수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충고했다.

▽‘하이닉스 죽이기’, 어떻게 피해가나〓선발업체들의 ‘하이닉스 죽이기’는 올 초부터 본격화돼 왔다. 가격이 폭락하면서 상당수의 업체가 감산에 돌입했지만 마이크론 등 선발업체는 오히려 결산을 앞두고 재고물량을 쏟아내 한계기업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도록 목을 조이기 시작한 것.

특히 마이크론은 채권단의 채무조정을 정부보조금 지원으로 몰아붙여 통상압력을 가하는 양동작전까지 사용하고 있다.

교보증권 김영준 책임연구원은 “선발업체들이 하이닉스 위기를 틈타 총공세를 펴고 있다”며 “확실한 회생방안을 제시해야만 ‘하이닉스는 산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고사작전도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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