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한국계 美작가 스테프 차 “인종혐오 막으려면 서로의 문화 꾸준히 가르쳐야”

한국계 美작가 스테프 차 “인종혐오 막으려면 서로의 문화 꾸준히 가르쳐야”

Posted May. 12, 2021 07:21,   

Updated May. 12, 2021 07:21

ENGLISH

1991년 3월 1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슈퍼마켓. 오렌지주스를 사려고 들어온 15세 흑인 소녀가 주스 병을 집어 배낭 안에 넣었다. 소녀가 손에 쥔 지폐를 미처 보지 못한 50대 한국인 상점 여주인은 계산대로 다가오는 소녀를 도둑으로 오인해 멱살을 잡았다. 소녀를 이에 맞서 주인의 얼굴을 때려 쓰러뜨렸다. 소녀가 계산대에 주스 병을 올려둔 채 가게를 빠져나가려는 찰나 주인은 권총을 집어 들었다. 소녀는 뒤통수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

이 사건은 삽시간에 흑인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당시는 백인 경찰 4명이 교통 단속 중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로드니 킹 사건’ 직후였다. 이 두 사건은 미국 내 흑인들이 한인 가게에 불을 지르고 아시아계 인종을 무차별 폭행한 ‘LA 폭동’으로 이어졌다.

LA 폭동의 단초가 된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소설이 황금가지에서 최근 출간됐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스테프 차(35)는 장편소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에서 인종 범죄에 얽힌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11일 저자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스테프 차는 “백인의 인종 혐오에 관한 책은 이미 아주 많다. 나는 유색인 커뮤니티 간의 갈등을 살피고 싶었다”고 밝혔다.

신간은 28년 전 벌어진 가상의 인종 범죄 사건을 다룬다. 사건의 구체적인 상황은 LA 폭동 시발점이 된 사건과 같다. 인종 범죄 가해자의 딸인 한국계 미국인 그레이스 박과 피해자의 동생인 흑인 남성 숀 매슈스가 화자로 번갈아 등장하며 각자의 가족을 조명한다. 소설은 가해자와 그의 가족의 경험은 서로 다르며, 피해자의 사망으로 가족들이 겪는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그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물려받은 가해자 가족과 분노를 물려받은 피해자 가족을 조명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가 그레이스와 숀을 화자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그레이스와 숀에게는 거의 죄가 없지만, 그들게에 가족은 너무나 중요하기에 가족이 겪은 인종 혐오 범죄의 여파를 피할 수 없다”며 “소수 인종이 수치심이나 분노, 죄책감을 경험하는 과정에 집중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한인과 흑인 간 갈등의 역사가 이어진 LA에서 자란 저자에게 인종 혐오는 백인 대 유색인종의 단순한 대립구도로 설명될 수 없었다. 저자는 인종 갈등과 혐오가 매우 다층적이며 어떤 인종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유색인종 간의 혐오 범죄는 굉장히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진다. 저마다의 문화와 편견이 서로 다르고 갈등이 매우 다양한 양태로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미국 내 인종갈등 해소에 대한 그의 전망은 밝지 않다. 그는 “공개적인 인종차별 발언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를 만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인해 인종 혐오가 더 심각해졌다. 행정부가 바뀌어 이런 분위기가 잦아들 수도 있지만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종 혐오 범죄를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을까. 더디더라도 다양한 인종의 문화와 역사를 지속적으로 가르쳐야한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무고한 아시아인들이 거리에서 공격당하는 걸 지켜보기가 힘듭니다. 인종 간 역학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해나가야 합니다.”


전채은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