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사이에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 ‘시험·면접 대비 약’ ‘공부 잘하는 약’으로 오남용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0∼19세 소아·청소년에게 부정맥·협심증·고혈압 등 심혈관 질환 치료제인 인데놀 처방 건수는 170만 건이었다. 지난해만 약 36만 건으로 5년 새 1.4배 급증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 처방을 받은 소아·청소년도 지난해 12만 명을 넘으며 5년 새 2.6배로 늘었다.
수험생들 사이에서 ‘시험·면접 대비 약’으로 알려진 인데놀은 교감신경을 차단해 심박수를 낮추고 혈압을 떨어뜨린다. 심혈관 질환 치료제인데도, 불안할 때 나타나는 신체 증상을 완화해 주는 심리 안정제처럼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수험생과 취업 준비생 사이에선 “수능 모의고사에서 효과를 봤다” “면접에서 떨지 않았다” 등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회자되며 인데놀 처방이 유행처럼 번졌다. 특히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돌며 ‘처방 쇼핑’을 하고 서로 약을 나눠 먹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인데놀은 의약품 상세 정보상 미성년자 투여 금지가 명시된 약이다. 하지만 의사들이 처방에 참고하는 의약품 적정 사용 정보(DUR)에는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미성년자에게 치료 목적을 벗어난 처방이 이뤄지면서 오남용과 그에 따른 부작용 우려가 커지고 있다. ADHD 약도 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아이도 많지만,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하며 ‘공부 잘하는 약’으로 무분별한 사용이 늘었다.
의약품일지라도 의존성이 생기면 오남용으로 이어지고, 어린 나이에 노출될수록 의존성을 통제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약은 치료 목적으로만 용량을 지켜 엄격히 써야 한다. 부모나 학생이 약 한 알로 성적 향상을 기대하며 함부로 약을 처방받아서도 안되지만, 의사도 적응증이 의심되는데도 손쉽게 처방해선 안 될 일이다. 한동안 감소세를 보이던 항생제 역시 202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위를 차지하며 그 추세가 반전됐다. 우리 사회가 약물 사용에 대한 심리적 문턱이 낮아진 건 아닌지 돌아보고 경계심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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