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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사찰 규명, ‘선거개입’ 의심 피하려면 보선 이후에

국정원 사찰 규명, ‘선거개입’ 의심 피하려면 보선 이후에

Posted February. 18, 2021 07:30,   

Updated February. 18, 20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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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정보원은 그제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국회의원 등 각계 인사 1000여명의 동향을 파악한 문건의 존재를 확인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직무범위를 이탈한 불법 정보”라며 정보위 의결이 있으면 비공개로 문건 보고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문건 공개를 요구하는 특별결의안을 발의했고, 국민의힘은 국정원 설립 이후 불법사찰 전반을 살펴보자는 특별법 제정을 주장했다.

 국정원이 주요 인사들을 상대로 불법 사찰했던 것이 사실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지난 일이라고 해서 부정과 탈법 행위를 모른 척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당이 현 시점에 이 문제를 집중제기하고 나서는 것은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국정원의 사찰 의혹은 정보기관의 오랜 ‘흑역사’다. 현 정부 들어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이 법적으로 금지됐지만 그 이전에는 정치인과 유력인사들의 동향 정보를 관행적으로 수집했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적폐청산을 명분삼아 이전 정권의 국정원 활동 전반을 파헤쳤다. 국정원 개혁발전위는 국정원의 민감한 활동내역이 담긴 메인 서버까지 샅샅이 뒤져서 지난 정부의 국정원장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지도록 했다. 오래 전에 충분히 문제 제기할 수 있었던 내용을 뒤늦게 들고 나온 의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은 정보위 보고에서 “문건엔 적법, 불법의 국가기밀과 개인정보가 모두 담겨 있다”고 밝혔다. 문건 내용의 탈법 여부를 가려서 분류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사찰의 진상 규명 보다는 여야 간 정치 공방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상황은 이미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어제 여당 의원들은 일제히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슈 키우기에 나섰다. 국회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은 TBS라디오에서 “박근혜 정부에서도 불법사찰이 진행됐다고 보는 것이 논리필연적으로 맞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민석 의원은 YTN라디오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고, 강훈식 의원은 CBS라디오에 나와서 당시 청와대 연관 의혹을 제기했다.

 이러니 여권의 정치 공세가 50일도 채 남지 않은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 부산시장후보 경선에 나선 박형준 후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이었다. 여당이 아무리 순수한 의도라고 주장해도 문제를 제기한 시점이 석연치 않으면 선거개입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여야가 진정으로 국정원의 낡은 과거사를 정리하겠다면 사찰 규명 문제는 보궐선거 이후로 미뤄야 한다. 그래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