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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백선엽 장군

Posted July. 14, 2020 07:41,   

Updated July. 14, 2020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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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10여 년 전에 어떤 행사에서 백선엽 장군을 처음 만났다. 행사가 끝나자 사람들이 백 장군에게 즉석 강연을 요청했다. 나는 조금 찜찜했었다. 고령의 유명인이 즉석에서 강연을 하다가 별로 안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경우를 너무 자주 경험한 탓이리라.

 백 장군은 신중한 성격이어서 초반에는 느릿느릿한 말투로 강연을 시작했고, 나는 ‘예상대로 흘러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 뒤에 30분 정도의 시간은 충격이었다. 6·25전쟁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 이념적이거나 정신교육적인 교훈도 아니고, 군이라는 지극히 전문적인 영역의 교훈인 듯하지만 보편적인 적용이 가능한 교훈이 적절하면서도 감동적으로 흘러나왔다. 백 장군은 상황 분석이 빠르고, 이를 토대로 적절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 탁월한 지휘관이란 인상을 받았다. 나중에 백 장군의 회고록을 읽어 보니 그때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6·25전쟁이 두 번째 위기를 맞았을 때, 매슈 리지웨이가 8군 사령관으로 새로 부임했다. 2차 세계대전 때 82공수 사령관을 지낸 리지웨이는 가차 없는 전형적인 강골 장군이었다. 점잖았던 월턴 워커와 달리 리지웨이는 한국군에도 직선적인 질책을 했던 것 같다. 백 장군은 이 질책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미군에 비해 무기와 보급이 형편없는 한국군의 상황을 감안하면 한국군은 잘 싸웠으며 그들의 분투는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런 발언은 한다. “밀려오는 적에게 등을 돌리고 후퇴했던 점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군이 10의 조건에서 100의 능력을 발휘했다면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상대가 150의 능력을 지녔다면 우리에게 향한 비난이 부당하다고 억울해만 할 것이 아니라 아군의 능력을 200으로 만들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간단한 진리 같은데, 이렇게 행동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백 장군은 그 방법을 찾았고, 한국군을 변화시키고 미군이 감탄하게 했다. 삼가 백 장군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