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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걷는 원시악어 흔적, 세계 최초로 경남 사천서 발견

두 발로 걷는 원시악어 흔적, 세계 최초로 경남 사천서 발견

Posted June. 12, 2020 07:48,   

Updated June. 12, 202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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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억1000만 년 전 한반도 남부. 호수 옆의 키 큰 양치식물을 평화로이 뜯던 초식공룡의 긴 목을 포식자의 강한 턱이 물었다. 쓰러지는 공룡의 눈에 비친 포식자는 육식공룡이 아니었다. 앞발을 들고 걷는 거대한 ‘이족보행 악어’였다.

 두 발로 걸으며 중생대를 호령한 거대한 원시악어의 발자국 화석이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발견됐다. 두 발로 걸은 것으로 추정되는 소형 악어의 골격 화석이 미국에서 발견된 적은 있지만 ‘물증’인 발자국 화석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경수 진주교대 과학교육과 교수와 한국지질유산연구소 배슬미 연구원,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복원기술연구실장 팀은 미국 콜로라도대 및 호주 퀸즐랜드대 팀과 공동으로 경남 사천 자혜리의 1억1000만 년 전 백악기 전기 지층인 ‘진주층’에서 두 발로 걸은 대형 원시악어 발자국 화석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11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지난해 초 자혜리에서 파충류 뒷발자국 화석 수백 개를 발견했다. 발 길이는 18∼24cm로, 발바닥 구조는 물론이고 발가락까지 선명히 보존된 화석이었다. 발가락이 4개라는 사실을 근거로 연구팀은 처음에는 중생대 파충류인 익룡으로 분류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경남 사천 아두섬 화석산지(천연기념물 474호) 및 남해 가인리 화석산지(천연기념물 499호)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비슷한 화석이 여럿 발견됐는데, 김 교수와 임 실장 팀은 2012년 논문을 통해 이것들이 날개를 들고 두 발로 걷는 독특한 익룡의 발자국 화석이라고 밝혀 왔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반전이 일어났다. 공동연구자인 마틴 로클리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와 자혜리 화석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바닥 형태가 악어와 비슷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로클리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보행렬 화석이 악어의 발 구조와 딱 맞았다”며 “익룡이 아닌 두 발로 걷는 악어일 가능성을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와이오밍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 등에서 두 발로 걸은 것으로 추정되는 약 2억 년 전(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기) 소형 악어 골격 화석이 나온 적은 있지만, 실제 발자국 화석은 발견된 적이 없었다.

 김 교수는 “곧바로 연구에 돌입한 결과 세 번째 발가락이 유독 긴 특징 등 현생 악어의 발자국과 매우 비슷한 특징이 확인됐다”며 “결정적으로 화석 일부에서 악어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발바닥 피부 흔적이 발견되면서 악어 발자국 화석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화석에 ‘대형 바트라초푸스 원시악어 발자국’이라는 뜻의 ‘바트라초푸스 그란디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트라초푸스는 ‘꼬리 없는 양서류’라는 뜻이다.

 연구 결과 이 악어는 몸의 길이가 최대 3m에 이르며 꼬리와 앞발을 든 채 몸을 수평으로 세우고 뒷발로만 걷는 독특한 걸음걸이를 지녔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리를 좌우로 구부린 채 기듯 걷는 현생 악어와 달리 다리가 몸통에서 바로 뻗은 상태로 걸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이 원시악어는 수십 마리가 집단생활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몸집도 커서 초식공룡을 잡아먹으며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육식공룡들과 경쟁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임 실장은 “두 발로 걷는 원시악어가 중생대 초기(트라이아스기)부터 전기 백악기까지 1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생존했고, 서식지도 북미와 한반도 등으로 넓었음을 확인했다”며 “악어가 공룡과 함께 당시 최상위 포식자를 이루는 생태계의 ‘주연’이었음을 최초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발견은 120년간 이어졌던 또 다른 논쟁에도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똑같은 발자국이 발견된 남해 가인리와 사천 아두섬에서 발견된 발자국이 두 발로 걷는 익룡이 아니라 악어였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날개를 들고 뒷다리로 걷는 익룡의 존재는 지난 120년간 고생물학계의 논란거리 중 하나였다. 임 실장은 “8년 전 연구에서 이들을 두 발로 걷는 익룡이라고 보고했지만, 너무나 이상해 논문에 ‘수수께끼의 거대 익룡’이라는 표현을 썼다”며 “이번 발견으로 익룡은 주로 네 발로 걷고, 두 발로 걷더라도 앞발로 걸었을 것이라는 가설에 힘이 실렸다”고 말했다.

 이번 화석이 발견된 진주층은 경남 진주, 사천, 고성 일대에 널리 퍼진 지층이다. 세계 최초의 뜀걸음 포유류, 세계 최고(最古) 개구리, 세계 최소 랩터 공룡, 꼬리를 들고 네 발로 걸은 원시악어, 도마뱀 등 다양한 중생대 동물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 1980년대부터 이 지역을 찾은 로클리 교수는 “진주층은 피부가 보존될 정도로 화석의 보존 상태가 우수하고 다양한 화석이 발견되는 세계 최고의 화석 산지”라고 말했다.


윤신영동아사이언스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