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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인종차별 열풍에...강물 처박힌 ‘노예상인 동상’

反인종차별 열풍에...강물 처박힌 ‘노예상인 동상’

Posted June. 09, 2020 08:06,   

Updated June. 09, 2020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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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콜스턴이 우리 도시에서 사라져야 한다.”

 7일 영국 서부 항구도시 브리스틀의 도심. 1만 명이 모여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 씨(46) 사망에 항의하며 시위를 열었다. 집회 도중 일부 시위대가 콜스턴 거리에 세워진 5.5m 높이의 동상으로 돌진해 얼굴에 달걀을 던졌다. 이어 이들은 밧줄을 목에 걸어 동상을 넘어뜨렸다. “이제 됐다”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 장면은 유럽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의 상징이 되고 있다.

 BBC 등에 따르면 유럽 곳곳에서 대규모로 열린 이날 집회에서 일부 시위대가 인종차별과 관련 있는 역사 속 인물의 동상들을 파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날 쓰러진 동상의 주인공은 17세기 노예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1636∼1721)이다. 브리스틀 출신인 그는 1680년 서아프리카 무역을 독점했던 왕립 로열아프리카 회사(RAC)의 관리로 활동하며 카리브해 일대와 아메리카대륙에서 약 10만 명을 유럽으로 끌고 와 노예로 팔았다. 브리스틀은 17세기 영국 노예무역의 중심지가 됐다.

 1689년 영국 명예혁명 이후 왕권이 약화되자 콜스턴은 자선사업가로 변신해 브리스틀과 런던의 학교, 병원에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브리스틀 지역 보수당 하원의원으로도 활동했다. 1721년 사망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지역 자선단체들에 기부했다. 이 같은 과정에서 브리스틀 내 학교, 공연장, 건물 등을 비롯해 거리 이름에까지 ‘콜스턴’이란 이름이 붙게 됐고, 1895년에는 동상이 세워졌다. 그러나 1815년부터 유럽에서 노예무역이 금지되면서 콜스턴의 노예무역 활동에 대한 비판이 고개를 들었다. 병원, 학교 등에 새겨진 그의 이름들이 삭제되기 시작했다.

 특히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최근 일주일간 ‘동상을 제거해 달라’는 청원 수천 건이 시에 접수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시위대는 이날 콜스턴 동상을 쓰러뜨린 후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게 당했던 것처럼 동상의 목을 무릎으로 눌렀다. 이후 동상을 항구 쪽으로 옮겨 에이번강에 던져 버렸다.

 벨기에 브뤼셀에서도 이날 반인종차별 시위대가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식민 통치를 했던 국왕 레오폴드 2세(1835∼1909)의 동상을 훼손시켰다. 레오폴드 2세의 잔혹한 통치로 1885∼1908년 1000만 명이 넘는 콩고인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되는 탓이다.

 이 밖에도 독일 베를린, 스페인 마드리드, 이탈리아 로마, 프랑스 마르세유, 덴마크 코펜하겐 등에서 이날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특히 런던에서는 집회가 격렬해져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경찰관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인종차별 시위가 폭력에 전복됐다”며 “평화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며 시위할 권리가 있지만 경찰을 공격할 권리는 없다”고 밝혔다.


김윤종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