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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탄 장착 ‘스마트 개미’들 대박 꿈 좇아 돌진

실탄 장착 ‘스마트 개미’들 대박 꿈 좇아 돌진

Posted April. 25, 2020 07:48,   

Updated April. 25, 202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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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으로 코스피가 롤러코스터를 탔던 지난달 직장인 김모 씨(39)는 만기가 돌아온 적금과 여유자금 등 약 5000만 원을 모아 주식 투자에 나섰다. 코스피가 1,800 선 아래로 내려간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네이버 등의 주식을 분할 매수하기 시작했다. 코스피가 한때 1,400대로 급전직하했을 땐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다행히 반등에 성공하며 김 씨는 현재까지 8%가량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최모 씨(30)도 비슷한 시기에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다시 오기 힘든 기회’라는 지인들의 말에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 4000만 원을 투자했다. 삼성전자 위주로 투자하다 수익률이 마뜩잖아 코스닥 바이오 종목과 원유 선물 상장지수펀드(ETF)로 눈을 돌렸다. 한때 2배 가까운 수익을 거둬 흡족했지만 최근엔 마이너스(―)로 돌아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한국 증시의 오랜 박스권이 깨지면서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다. 사태가 잦아들면 결국 주가가 더 오를 것이란 믿음, 급등락 장세에서 흐름만 잘 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이 굳건하다. 1,400 선까지 폭락했던 증시가 한 달도 안 돼 1,900 선을 회복하는 등 일단 현재까지 결과는 성공적이다. 하지만 파생상품과 테마주를 중심으로 손실을 보는 투자자도 늘고 있고, 증시 2차 충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주식 살 돈 역대 최대… ‘스마트 개미’ 출격

 증시 급등락 장세 속에서 저가 매수를 노린 개미투자자들은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일 기준으로 10만 원 이상의 잔액을 가지고, 6개월 내에 한 차례 이상 주식을 거래한 경험이 있는 ‘활동 계좌’ 수는 3110만5665개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스피가 1,400대까지 내려갔던 지난달에만 86만 개가 늘어 2009년 4월 이후 최대 증가폭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하반기(7∼12월)에 매달 20만 개 미만씩 증가한 것과 비교된다.

 개미들의 실탄(투자금)도 풍족하다. 한파를 겪고 있는 부동산 시장의 자금까지 주식 시장으로 넘어오고 있다.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에 맡겨놨거나 주식을 판 뒤 찾지 않은 ‘투자자 예탁금’은 21일 기준 45조5012억 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1월 20일(28조1620억 원)보다 61% 늘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양태는 2008년 금융위기 등 과거에 비해 양적, 질적 측면에서 크게 달라졌다고 본다. 충분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배당 등을 고려해 우량주 가치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1월 20일부터 이달 22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22조8808억 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이 중 약 8조 원이 삼성전자 주식이었고, 삼성전자우(1조6239억 원), SK하이닉스(1조1225억 원), 현대차(9440억 원), 삼성SDI(6600억 원) 등이 뒤를 이었다. 순매수 상위 5개 종목 모두 시가총액 상위 10위 안에 드는 우량 기업이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은 같은 기간 약 25조 원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장효선 삼성증권 연구원은 “개인투자자들의 우량주 중심의 매수 패턴을 볼 때 단기 차익보다는 배당 및 안정적 이익을 꾸준히 추구하는 장기 투자 성격이 느껴진다”며 “개인들의 높아진 정보력을 바탕으로 긍정적 결과를 기대해봄 직하다”고 전망했다.

○‘한탕 투자’ 기웃

 하지만 동학개미의 성공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분석도 많다. 2개월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이어진 폭락과 회복이 향후 이어질 경제적 충격을 충분히 반영한 것인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이미 가능한 재정·통화 정책 대부분을 꺼내 쓴 터라 글로벌 실물경제를 중심으로 2차 충격이 오면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심리적 지지선이 약한 개인투자자들이 2차 하락장을 버티지 못하고 ‘패닉 셀(sell)’에 나서면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상 최대로 늘어난 증시 주변 자금이 투기성 자금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더딘 우량주의 상승폭에 만족하지 못한 일부 개미투자자들이 ‘한탕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주식 거래 경험이 많지 않은 개인들이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 투자에 나서거나 수익성을 예측하기 어려운 테마주, 파생상품으로 눈길을 돌리는 등 곳곳에 이미 위험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국제 유가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21일, 원유 관련 상장지수증권(ETN)과 상장지수펀드(ETF) 거래 대금은 1조16억 원으로 전날(6438억 원)보다 55.5% 급증했다. 코스피시장 거래 금액(13조6689억 원)의 7.3%에 달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최근 원유 가격이 연이어 급락하면서 수천억 원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22일 이례적으로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에 대해 ‘전액 손실’을 경고하고, 일부 종목의 거래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23일 금융감독원도 관련 상품에 대해 최고 수준인 ‘위험’ 등급의 소비자 경보를 발령하며 투자 자제를 권고했다.

○개미투자자 승리엔 ‘인내심’ 필수

 주가 폭락 시기에 개인 자금이 대규모 유입된 것은 이번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부족한 뒷심이 개미투자자들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2007년 말 코스피 2,000 선에서 하락장이 시작되자 개인투자자들은 2008년 9월까지 적극적으로 주식을 사들였다. 하지만 10월 900 선까지 무너진 대폭락장에서 견디지 못한 개인들이 매도에 나서면서 대규모 손실을 떠안았다.

 아직 대외적으로 변수가 많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현재로선 코로나19 재유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기업 실적도 얼마나 악화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국제 유가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도 고려해야 한다. 하인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미 코스피 낙폭이 많이 회복된 상황이라 향후 주가 상승 속도가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기보다 당장 수익률이 높지 않더라도 기초체력이 좋고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우량주 위주로 투자할 것을 당부했다. 신동준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약세장은 성급한 이들의 돈이 인내심 있는 이들에게로 이동하는 일종의 송금 장치’라는 말이 있다”며 “주가 등락에 과잉 반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