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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 짓밟은 日... 단호히 대응하되 타협의 길 열어둬야

자유무역 짓밟은 日... 단호히 대응하되 타협의 길 열어둬야

Posted August. 03, 2019 07:27,   

Updated August. 03, 2019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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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예고한 대로 한국을 수출절차 간소화 대상국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어제 각의에서 의결했다. 7일 공포 후 28일부터 시행되면 지난달 반도체 관련 3개 품목으로 시작된 수출규제 대상이 사실상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전 분야로 확대되는 것이다. 규제가 강화되는 일본의 전략물자는 1194개 품목이며 이 가운데 영향이 큰 품목은 159개 정도다. 각의 결정이 나오자 문재인 대통령은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에 상응하는 조치를 단호하게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일관계가 1965년 국교 수립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일본의 이번 조치는 세계 자유무역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무역의 무기화는 촘촘하게 얽혀 있는 세계적 분업체계를 무너뜨리는 비열한 행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국제 체제는 자유무역을 추구하면서 공산권 국가에 대해선 핵과 미사일, 생화학 무기, 재래식 무기의 수출을 엄격히 통제했다. 이에 따라 1970년대 말부터 이를 구체화한 4대 체제에 한국과 일본 등 29개국이 가입해 서로 수출허가를 간소화해준 것이 백색국가와 비슷한 제도다. 그동안 4대 체제에 가입한 29개 국가 중 백색국가에 포함된 나라를 나중에 제외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는데 한국이 이 리스트에서 빠지는 첫 국가가 된 것이다.

 일본이 백색국가 제외 이유로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통제가 잘 안 된다는 점을 든 것은 터무니없는 억지다. 한국이 전략물자 수출통제 면에서 일본보다 더 엄격한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경제 제재를 하기 위해 전혀 연관성 없는 안보논리를 끌어댄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다. 아베 신조 정부가 이번 각의 결정을 즉각 철회해야 하는 이유다.

 어제 한일 증시는 큰 폭으로 하락하며 양국 경제에 대한 우려를 반영했다. 한일 갈등에다 미국이 중국에 추가 관세 10%를 부과한다는 소식이 겹치면서 한국 코스피는 7개월 만에 2000선이 무너졌고, 일본의 닛케이225 역시 2.11%나 급락했다. 정부는 기업들과 긴밀히 공조하면서 단기적으로 일본 부품 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대체재 마련 등 대책과 함께 중장기적으로 연구개발과 세제 지원 등을 통해 필수 소재의 국산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정부의 대응은 전략적이어야 한다. 아베 정부 결정의 부당성을 비판하는 여론전은 더 단호하게 원칙적으로 펴나가면서도 여러 경로의 외교채널을 가동하는 외교적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강온 양면의 투 트랙 전략이다. 백색국가 제외 결정 공포 후 3주의 유예기간이 있다. 경우에 따라 그 시간은 늘어날 수도 있는 만큼 외교협상의 출구를 막는 극단적인 강경책은 피해야 한다. 결국은 한일 양국 정상 간 담판으로 상황을 정리할 수도 있다는 최종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상황 관리를 해나가야 한다. 한일 양국은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할 문 대통령의 8·15 광복절 기념사와 10월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 등이 주요 고비가 될 수 있다. 

 한일 갈등에 한동안 거리를 뒀던 미국이 적극 중재에 나서는 듯한 분위기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신호다. 이번 각의를 앞두고 미국의 ‘현상동결 협정(standstill agreement)’ 제안을 일본이 거부했지만 미국이 추가 중재 제안을 할 경우 일본도 무작정 강경하게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국내에서 아군끼리 소모전을 펼쳐 적전분열(敵前分裂) 양상을 보여선 안 된다. 대외적 메시지는 가급적 한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건전한 대안 제시조차 ‘친일-반일’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태도는 자제해야 할 것이다. 특히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이후 우리 정부가 사법부 판결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온 데 대해서도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강구할 수 있는 대책은 없는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권 일각에서 한일 협상의 지렛대로 거론되는 한일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 카드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장사정포 도발과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의 하늘을 침범해 동북아 안보지형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GSOMIA는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는 일본보다 미국이 더 중시한다. 일본의 억지 도발에 맞서기 위한 압박용일 순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가 경제 문제에 안보 이슈를 연계해 외교 문제를 경제로 보복하는 일본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 과연 장기적 국익에 부합하는지 깊이 있게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