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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내한공연, 인삿말도 없이 노래만…원곡 비튼 2시간 웅변

밥 딜런 내한공연, 인삿말도 없이 노래만…원곡 비튼 2시간 웅변

Posted July. 30, 2018 07:48,   

Updated July. 30, 2018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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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딜런(77)의 노랫말은 세상 시각적이며 다이내믹하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 머물던 성경이나 신화 소설 속 인물들도 때론 이 짓궂은 극작가의 노랫말 무대로 우르르 끌려나와 억지 연기를 한다. 로미오가 신데렐라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노트르담의 꼽추가 카인과 아벨, 착한 사마리아인과 한 절(節)에서 뒹군다. 난데없이 로빈 후드로 변장한 아인슈타인이 등장하는가 하면 신과 아브라함은 20세기 유머로 ‘밀당’한다.

 딜런은 마치 독한 압생트를 퍼마신 시인 랭보처럼 세계를 부수고 재창조한다. 영화로 만든다면 코언 형제와 기예르모 델 토로가 머리를 맞대야 하리라. 초현실적 분장과 컴퓨터그래픽, 블랙유머를 뒤섞은 철학적 판타지를 위해.

 그러나 딜런의 콘서트는 세상 지루하기 이를 데 없다. 시각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공연에서 노랫말조차 못 알아듣는다면 27일 저녁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그의 두 번째 내한 공연이 딱 그랬다.

 딜런의 표정이라도 확대해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조차 없었다. 원래 설치 예정이었으나 공연 직전 딜런 측의 요구로 무산됐다. 노래의 변곡점을 강조해줄 조명의 변화도 없었다. 관람보다 독서에 가까운 경험. 클로즈업도 교차 편집도 없어 정지 화면 비슷한 영상을 50m 떨어진 50인치짜리 TV로 2시간 동안 감상한 셈이랄까.

 “앙코르로 한 거, ‘Blowin' in the Wind’ 맞는 거지? ‘Don't Think Twice, It's Alright’도 가사 듣고야 그게 그건지 알았다니까.” 한 관객이 공연장을 나서며 툴툴거리듯 말했다.

 안 그래도 단조롭게 반복되는 선율을 4절, 5절로 늘이길 즐기는 딜런은 그런 원곡의 선율들마저 더 심심하게 바꿔 불렀다.

 일견 무성의하게 들리는 이런 가창은, 그러나 실은 혼신의 열창 아니 웅변이었다. 노랫말이 ‘지금 이 순간 딜런의 재해석’으로 변형 낭독되는 뉘앙스에만 관객이 집중하도록, 그는 시선을 분산시킬 다른 장치를 없앤 것이다. 노래 빼곤 한마디 인사조차 건네질 않았다. 자신이 왜 음악가 중엔 이례적으로 문학상을 받을 만한 인물인지를 이런 식으로 철두철미하게 방증했다.

 교훈은 남았다. 혹 다시 딜런의 공연에 간다면 맨 앞자리를 예매하는 게 낫겠다는 것. 열창하는 딜런의 표정이라도 육안으로 볼 수 있게. 아니면 가사를 학자 수준으로 공부해 가거나. 이를테면 딜런이 “아들 죽여서 바쳐”(‘Highway 61 Revisited’에서)를 “아들… 죽여서∼ 바쳐!”로 리듬과 음정을 바꿔 부를 때, 그 오묘한 뉘앙스 변주를 순간순간 느끼며 전율할 수 있도록.


임희윤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