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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로 갈라 南-南, 그리고 韓-美

Posted February. 24, 2018 07:45,   

Updated February. 24, 2018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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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식 방문을 둘러싸고 우려했던 일들이 국내외에서 벌어지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어제 정부의 김영철 방한 허용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청와대 앞에 몰려가 “천안함 폭침의 주범 김영철은 군사법정에 세워야 할 작자”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영철 거부 청원이 빗발쳤다. 미국도 불쾌감을 드러냈다. 국무부 대변인은 “그가 (천안함)기념관에 가서 그에게 책임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보는 기회로 삼기 바란다”고 말했다. 천안함기념관은 북한 도발로 파괴된 천안함 선체가 전시돼 있는 곳이다.

 김영철 방문을 둘러싼 우리 사회 내부의 극심한 갈등은 뻔히 예견된 일이다. 40명이 넘는 우리 군 장병의 목숨을 앗아간 대남도발의 책임자를 대표단장으로 보내겠다는 김정은의 노림수에 그대로 말려든 꼴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북한의 김영철 파견 통보가 오자마자 덥석 수용했다. 통일부는 어제 설명자료까지 내고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고 김영철이 당시 정찰총국장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구체적인 관련자를 특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해명에 급급했다. 국민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대승적 견지에서 이해해주실 것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누가 방문하든 남북 해빙 기류를 이어가기만 한다면 감지덕지하겠다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한미 간 균열까지 불가피해보인다. 미국이 김영철을 향해 ‘천안함에나 가보라’고 싸늘한 반응을 내놓은 것은 우리 정부에 대한 우회적이지만 노골적인 불만 표시다. 미국의 대북제재 대상인 김영철에 대한 한시적 제재 예외조치를 인정해 달라는 한국의 요청을 대놓고 거부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의 처사를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대북 최대 압박 기조에 김을 빼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도 느껴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금명간 초강도 추가 대북제재를 직접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방한해 천안함기념관을 다녀온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김정은 일가를 “악의 가족 패거리”라고 비판했다. 한국이 ‘손님’으로 맞아들인 김여정을 두고도 “폭압정권의 중심기둥”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갈등과 균열 속에서도 정부는 김영철 방한 수용 방침을 번복할 의사가 없는 듯하다. 정부는 김영철이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을 맡고 있는 만큼 협상의 카운터파트라는 현실을 감안해달라고, 북-미 대화의 진전을 위해서도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문 대통령이 김여정에게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 대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데 대한 김정은의 답변을 갖고 올 것이라는 기대다. 반발 여론을 의식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영철의 면담 장소를 청와대가 아닌 외부로 검토하는 등 ‘환대’로 비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김영철이 어떤 메시지를 가져오든,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북한을 다루는 한국 정부의 자세다. 북한이 원하는대로 다 들어주고 끌려다니는 태도를 보인다면, 설령 북한을 추가의 남북접촉이나 북미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낸다해도 비핵화 샅바싸움에서부터 별다른 힘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최소한 북한에 따질 것은 따지고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김정은의 비핵화 결단은 고사하고 우리 사회와 한미 간 균열만 가속화할 뿐이다. 벌써 평창 이후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