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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틀리면 뒤엎는 北, 마냥 끌려 다니는 南

수틀리면 뒤엎는 北, 마냥 끌려 다니는 南

Posted January. 31, 2018 09:28,   

Updated January. 31, 201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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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29일 밤 금강산에서 열기로 한 남북 합동 문화공연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아무런 사전 설명이나 언질도 없이 한밤중에 불쑥 보낸 대남 통지문 한 장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유감’ 표명 한 마디에 기존 합의사항의 이행만 강조했다. 어제는 당장 하루 앞둔 마식령스키장 남북 공동훈련 일정 발표를 미룬 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평창 올림픽을 볼모로 남측을 길들이겠다는 북한의 전형적 수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형국이다.

 북한의 제멋대로 합의 뒤엎기는 현송월 일행의 방문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갑자기 중지했다가 다시 재개한 데 이은 두 번째다. 북한은 금강산 공연을 취소하면서 2월 8일 평양에서 벌일 열병식에 대한 우리 언론의 비판을 이유로 내세웠다. 평창 올림픽 전날 전 세계를 위협하는 핵미사일을 앞세워 위협적인 열병식을 열겠다는 북한이다. 그런 북한이 금강산 공연을 마치 자신들이 통 크게 베푼 시혜라도 되는 양 하루아침에 없던 일로 해버리고 “(남측 언론이) 내부 경축행사까지 시비해 나섰다”고 되레 큰소리를 치고 있다.

 수틀리면 판을 깨는 북한의 행태는 평창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소지가 다분하다. 북측 예술단의 강릉·서울 공연 취소, 나아가 평창 올림픽 불참까지 협박할 수 있다. 상대를 곤혹스럽게 만들어 길들이겠다는 얕은 수법이지만 북한 스스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존재인지 만천하에 드러내는 한심한 자충수다. 그럼에도 이미 굳어진 습성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늘 연두 국정연설을 앞두고 미국의 향후 대북정책까지 떠보겠다는 계산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 혐오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북한에 우리 정부는 속절없이 끌려 다니고 있다. 북한이 돌연 금강산 행사를 취소한 만큼 당장 마식령스키장 공동훈련에도 불똥이 튈까 노심초사다. 남북 화해 무드 속 ‘평화 올림픽’이라는 상징적 이벤트에 집착한 나머지 북한에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는 분위기다. 금강산 공연은 대북제재 위반 논란에도 발전용 경유까지 북한에 실어가 치르는 것인 만큼 취소는 차라리 잘 된 일일 수 있다. 마식령스키장 훈련도 그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북한의 망동으로 한반도가 또 다시 대결 분위기로 치닫고 그 속에서 올림픽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는 우리 정부의 걱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남북대화 과정에서 보여준 호락호락한 자세가 북한의 터무니없는 버릇을 도지게 만든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