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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의 안중근 뮤지컬

Posted February. 10, 2015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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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중국의 국경 부근에는 여진족 말로 된 지명이 존재한다. 탄광이 있는 함경북도의 아오지는 여진어로 불타는 돌이라는 뜻이다. 중국 쑹화 강 옆의 하얼빈은 그물 말리는 곳이라는 여진어다. 과거 이 지역이 여진족 땅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얼빈은 19세기 말 러시아가 동청()철도를 건설하면서 이곳에 역을 만든 뒤 오랫동안 러시아 관할로 있었다. 한국의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러시아와 회담하러 온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다. 현장에서 체포된 안중근은 러시아어로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외쳤다.

안중근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영웅이 최근 하얼빈에서 공연을 가졌다. 의거 현장에서 올려진 첫 무대다. 안중근은 끝까지 의연하고 당당했다. 거사를 앞두고는 장부처세가라는 한시를 짓는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분개해 한번 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그는 일본에 체포된 다음 이토의 죄악 15개 조를 논리정연하게 설파했다. 쑨원, 위안스카이 등 당시 중국 지도자들은 그를 높이 찬양했다.

연출가 윤호진은 2009년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만들었다. 6년 전 우리 측이 하얼빈 공연을 제의하자 하얼빈 시는 불가() 입장을 밝혔다. 일본과의 관계를 의식한 반응이었다. 중일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이전에 공연을 거절당한 것이나 이번 공연 모두 정치적 변수가 개입된 결과다.

민족적 소재의 예술작품은 해외 진출이 쉽지 않다. 나라마다 역사적 공감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뮤지컬이 세계화를 위해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처음부터 세계 공통의 소재를 다루거나, 민족적 소재라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를 거론할 때 여성 인권의 보편적 문제로 호소해야 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해외 진출을 노리는 뮤지컬 영웅이 완성도를 높여 유럽이나 미국에서 뜨거운 박수를 받을 때 비로소 세계화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