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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국에서 꽃이 사라진다

Posted February. 28, 201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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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매주 화요일을 꽃 사는 날로 지정해 놓은 것을 아는 국민은 많지 않다. 이달의 꽃이라는 제도도 있으나 마찬가지다. 올해 1월의 꽃은 심비디움, 2월은 봄의 전령 프리지아였다. 꽃 소비를 늘려 보려는 아이디어들이지만 반응은 냉담하다. 한때 1조 원을 넘었던 연간 꽃 매출액은 8000억 원대로 떨어졌다. 국민 1인당 꽃 소비액은 연간 1만5400원으로 노르웨이(16만 원) 스위스(15만 원)의 10분의 1 수준이다.

그나마 축하용으로 인기 있는 난초의 경우 80% 이상이 수입품으로 화훼 농가에 큰 도움이 안 된다. 대만 중국에서 들여온 것을 베트남산 화분에 넣어 판다. 꽃 소비는 국민소득과 비례한다는 게 정설이지만 한국에선 통하지 않는다. 꽃 소비가 가장 많았던 2005년 국민소득은 1만6500달러, 지난해에는 2만4000달러로 추산된다. 소득은 45% 늘어났지만 꽃 소비는 20% 줄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인격 수양을 위해 그렸던 문인화의 소재는 매화 난초 국화였다. 꽃을 사랑하는 전통은 고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연암 박지원은 어제 내린 비에 살구꽃은 졌으나 복사꽃은 아직 고우니/조물주가 사사롭게 어느 한쪽을 좋아하는 건가라는 멋진 글을 남겼다. 조선 후기 문신인 직재 서형수는 서울 성밖 북적동(현 성북동)에 꽃구경을 다녀온 뒤 북적동에 아름다운 꽃이 향기를 내뿜으면 서울의 남녀들로 미어지지 않는 날이 없다고 전했다.

외국에선 꽃 선물이 빈번하다.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에는 노란 미모사를 주고, 책과 장미 축제(4월 23일)에선 남자가 여자에게 장미를 바친다. 반면 한국 젊은이들은 주로 초콜릿을 주고받는다. 꽃 생산자들이 새 학기를 맞아 소비 촉진을 위해 이화여대 등 대학에 장미를 보낼 계획이다. 농림축산식품부도 꽃의 생활화를 외치지만 이렇다 할 변화는 없다. 정치권과 사회 세력의 극한 대치, 살벌한 세태 등도 혹시 꽃이 사라지는 현상과 관련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성큼 다가온 봄에 꽃의 부활을 기다려본다.

홍 찬 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