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NLL 스트레스와 피로스의 승리

Posted July. 31, 2013 06:56,   

ENGLISH

한낮의 혈전은 끝났고 서해 북방한계선, 즉 NLL 정국도 서서히 마무리되고 있다. NLL 정쟁 중단(새누리당) NLL 논란 영구 종식(민주당) 등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 모두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NLL 싸움 그만해라. 먹고살기도 힘든데라는 얘기를 하도 들어온 터라 여야의 이런 움직임에 늦었지만 잘됐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럼에도 뭔가 찜찜함이 남는 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여야는 NLL 논란에 대한 국민의 염증을 의식하면서도 속으론 정치적 득실을 따져봤을 것이다. 대선 불복 불씨를 잠재우고, 친노라는 공동의 적에게 치명상을 입힌 정도에서 적당한 휴전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 같기도 하다. 정쟁 중단? 좋다. 다만 무슨 인심이라도 쓰듯 우린 민생경제를 위해 NLL 논란을 중단하기로 대승적(?) 결단을 내렸으니 그리 알라 했다고 해서 네 그럴게요 하고 싹 잊기엔 그동안의 NLL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

사실 NLL 논란의 연원은 지난해 9월 당시 박근혜 대선후보의 본보 인터뷰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후보는 NLL 존중을 전제로 서해 공동어로 및 평화수역 설정방안 등을 북한과 논의해볼 수 있다고 밝혔고, 북한은 2주일여 뒤 무지의 표현이라며 육두문자를 섞어 박 후보를 비난했다. 난데없이 웃는 낯에 뺨 맞은 격이 된 박 후보는 당연히 내가 모르는 뭔 일이 있었나 했고, 이게 정문헌 의원의 노무현 NLL 포기 발언 폭로로 이어졌음은 알려진 대로다.

댓글 논란 속에 국가정보원이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공개하는 초유의 일까지 벌어졌지만 진실은 손에 잡힐 듯하다 빠져나가 여전히 뿌연 안개에 휩싸여 있다.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명확히 한 건지 안 한 건지, 사초() 폐기를 지시했는지 등 그동안 제기돼 온 굵직한 쟁점 외에도 몇 가지 짚고 싶은 곁가지 이슈가 머릿속을 맴돈다.

그중 하나가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실세들의 모호한, 또는 헷갈리는 태도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서해평화협력구상 자체를 NLL 무력화를 위한 이적행위로 보고 있는 듯하다. 2007년 정상회담 당시 국방장관으로 북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과 협상을 벌였던 김장수 현 대통령외교안보실장은 등거리등면적 원칙만 관철되면 서해평화협력구상 자체엔 문제가 없다는 건지 말이 없다.

진보 진영과 야권이 서해 공동어로구역 설정이 NLL 포기라면 박 대통령이 밝힌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 구상은 휴전선 포기 아니냐. 이중잣대다라고 공세를 퍼부었지만 여권에서 누구 하나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걸 못 봤다. 임기를 불과 4개월 남긴 대통령이 국민 동의 절차도 없이 북한 지도자를 만나 서해5도에서의 군 철수 운운하고 온 것과 확고한 안보태세를 바탕으로 유엔 참전국이 참여하는 DMZ 평화공원을 만들자는 구상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는데도 말이다.

NLL 정국의 대미는 사초() 폐기 논란이다. 진실을 명확히 가려야 한다. 문재인 의원의 솔직한 입장 표명이 나와야 할 것이다. 다만 정치적 사안으로 변질된 사초 폐기의 진실을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낸다 한들 야권의 승복과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울러 사초 누설의 책임도 따져야 한다는 일각의 지적을 여권은 그냥 외면할 건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 한낮의 복잡한 사건이 마무리되고 고요해질 무렵 조용히 눈을 부릅뜨고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 이제 정치적 득실이 아니라 깨달음을 곰곰이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누가 이기든 결국은 상처뿐인 영광,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