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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여 대통령 시대의 여성 임원

Posted February. 22, 201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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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미국 일리노이 주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베티 골드스타인(19212006). 그는 명문여대 스미스 칼리지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뒤 뉴욕의 신문사에서 일하다 26세 때 칼 프리단과 결혼했다. 둘째 아이를 가져 회사에 출산 휴가를 요청했으나 해고당하면서 직장생활을 접었다. 그가 백인 중산층 주부의 전형적 삶에서 이탈한 것은 42세 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동창생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우울증에 시달리는 전업주부들의 삶을 추적한 르포 형식의 책 여성의 신비를 펴낸 것이 계기였다. 이 책은 260만 부 이상 팔리면서 여권운동의 봇물을 터뜨린 기폭제가 됐다.

올해로 여성의 신비 출판 50주년을 맞아 미국에서는 이 책의 저자인 골드스타인 다시 보기 열풍이 불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남성 중심사회의 교육과 정책이 여성을 어머니 아내 소비자의 종속적 역할에 옭아매고 사회 참여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외의 중산층 동네를 편안한 포로수용소라고 표현했다. 이 같은 자극적 문구로 출간 당시 1920세기를 통틀어 가장 해로운 책이란 비난을 받았으나 지금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로 꼽힌다. 성 평등 실현과 여성의 진정한 해방을 촉구한 저자의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미국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14.1%(2011년 기준)라는 통계가 보여주듯 일하는 여성들에게 유리천장은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은 이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이다. 약 6000명에 이르는 100대 기업 임원 중 여성은 올해 겨우 100명(총수와 소유주 일가 제외)을 넘어섰다. 공공기관과 관련해 얼마 전 국회에선 여성 임원 비율을 3년 내 15%, 5년 내 30%로 획기적으로 높이는 법안을 내놨다. 하지만 여성 간부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에서 실현까지는 갈 길이 멀다. 지난해 말 기준 공공기관 149곳 중 임원 후보군에 해당하는 1급 여성 간부 비율은 2.6%(80명)에 불과했다.

공기업에서 일하는 한 여성 임원의 말은 새겨볼 만하다. 말단사원으로 입사해 경력을 쌓아가며 임원으로 승진하는 여성이 늘어나야지 단순히 숫자 채우기여선 안 된다. 여성 임원의 확충 시도는 평가할 만하나 생색내기 식 무리한 추진보다 차근차근 늘려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며칠 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다. 외국 전문가들은 한 세기 전만 해도 남성 우월주의 전통이 지배적이던 한국에서 미국도 해내지 못한 여성 대통령의 선출이란 위업을 달성했다고 평가한다. 대통령에 이어 민간기업과 공공기관도 우리나라가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모범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