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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 입발린 공약 남발 힘든 숙제는 외면

박-문, 입발린 공약 남발 힘든 숙제는 외면

Posted December. 14, 2012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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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논란을 낳고 있는 주요 대선공약들이 한 후보의 공약 안에서도 서로 모순되거나 정책효과가 상충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자신이 내건 공약들의 내적 충돌 때문에 정책의 일관성, 실현 가능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선거 구도가 초박빙으로 흐르면서 일단 좋아 보이는 것은 다 하고 보자는 공약 남발이 이런 현상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이렇게 상충되는 정책들까지 쏟아내면서도 정작 차기 국가지도자가 반드시 결단해야 할 주요 과제, 표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후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좋은 건 다하겠다 하다가 자기모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3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정부의 양육비 지원은 여성의 근로의욕을 낮추기 때문에 고령화로 유휴인력의 활용이 절실한 우리 상황에서는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며 과거 핀란드, 노르웨이에서도 양육수당 도입으로 여성의 노동공급이 낮아지는 결과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현재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양육수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아동수당 지급을 각각 공약하고 있다. 동시에 둘 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스스로 내놓은 공약들이 상반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어느 쪽도 해명하지 않았다.

두 후보가 내놓은 반값등록금 및 청년실업 해소 공약도 공약 모순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된다. 등록금을 깎아 대학 문턱을 낮추면 학력 인플레이션 현상이 심화되고 대졸자 간 구직경쟁이 심화돼 청년실업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들의 고졸 채용 붐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경제 전문가들은 두 후보의 일자리 공약 역시 같은 이유로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박 후보는 늘지오(일자리를 늘리고, 지키고, 질을 올리겠다), 문 후보는 만나바(일자리를 만들고 나누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겠다)를 내세우고 있다. 둘 다 일자리의 질과 양을 동시에 높이겠다는 것이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경제 사정이 아주 좋을 때라면 몰라도 지금 같은 국면에서는 둘 중 우선순위를 분명히 정해야 한다며 임금을 올리고, 해고를 어렵게 하면서 일자리 양이 늘어나길 바라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불필요한 토건사업을 줄인다면서 정작 지방에서는 도로, 공항 신설 공약을 남발하거나 중앙정부의 복지지출을 늘리면서 지방재정도 확충하겠다고 약속하는 것도 무리한 정책 조합(폴리시 믹스Policy Mix)에 해당한다. 경제학자들은 무엇보다 일자리를 만들 기업을 규제하면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게 근본적으로 가장 큰 모순이라고 비판한다.

필요하지만 골치 아픈 숙제엔 침묵

꼭 필요하고 시급한 과제들은 표가 안 된다는 이유로 대선후보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이념 문제를 떠나 차기 대통령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인데도 후보들이 입을 다무는 건 직무유기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사용후 핵연료 폐기 문제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는 지금 원자력발전소 4곳에 임시로 보관하고 있다. 곧 저장시설이 포화되기 때문에 늦어도 2014년까지 중간저장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두 후보는 이에 대한 로드맵을 전혀 내놓지 않았다. 자칫 저장시설의 후보 지역이 공론화되면 이 지역 표를 잃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거론 자체를 회피하는 것이다.

에너지 정책의 핵심인 전기요금 인상 문제에 대해서도 답이 없다. 매년 되풀이되는 전력난을 막기 위해서는 전기요금 현실화를 통한 에너지 소비문화의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냉난방 수요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가정용 요금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린다. 금연정책의 핵심인 담뱃값 인상이나 막대한 적자를 보는 공무원연금 개혁 등 다른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도 후보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지 오래다.

목진휴 국민대 교수(행정학)는 두 캠프 모두에 전문성을 가진 학자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정치적 이익이 없다고 판단한 사안들은 공약에서 배제하고 있다며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인기 없는 정책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힐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후보들의 모순된 공약을 보면 아프지 않게 꼬집겠다 브레이크 밟고 속도를 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누가 집권하든 공약 상당수를 스스로 철회하는 자기고백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