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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이전 공기업은 신이 긍휼히 여길 직장?

지방이전 공기업은 신이 긍휼히 여길 직장?

Posted November. 13, 2012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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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공공기관들이 본사 지방 이전을 앞두고 인간의 직장으로 강등당하는 분위기다. 입사 희망자가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젊은 사원들이 속속 회사를 그만두고 있다. 모두 서울을 떠나기 싫다는 게 이유다.

지방 이전 안 하는 공기업 없나요?

수도권의 121개 공공기관(공기업 포함)은 내후년까지 전남 나주, 강원 원주 등 전국 10개 혁신도시로 본사를 옮긴다. 취업준비생들은 어렵게 공공기관에 합격하더라도 곧장 지방에 내려가야 돼 해당 지역 출신이 아닌 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최근 취업 뽀개기, 공공기관을 준비하는 사람들 등 취업 관련 대형 인터넷 카페에는 공기업의 지방 이전을 둘러싼 취업준비생들의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카페 회원들은 서울에 남는 공기업 명단을 정리해 공유하는가 하면 익명 게시판에는 서울의 대기업과 지방 이전 예정 공기업 중 어느 곳을 지원해야 하느냐는 글도 수시로 올라온다. 답변의 대부분은 정년이 짧더라도 대기업이 낫다는 쪽이다.

취업준비생들이 매긴 현 상태와 장래성을 모두 감안한 공기업 서열의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 역시 본사의 지방 이전 여부다. 서울에 남는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한국무역보험공사, 예금보험공사 등 금융 공기업이 상위권을 싹쓸이했고 같은 이유로 서울시 산하기관들도 상위권에 랭크됐다. 반면 한국가스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공사 등 지방 이전을 앞둔 곳들은 최하위권인 2528위에 그쳤다.

일부 취업준비생들은 공기업 대신 대기업 입사나 공무원 시험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다니던 중견기업을 지난해 그만두고 공기업 취업을 노리던 이모 씨(27여)는 최근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공기업이 영화관이나 편의점조차 없는 허허벌판으로 내려가는 것 아니냐며 이제 결혼도 생각해야 하는 나이인데 아무리 복지가 좋고 안정적이라 해도 연고도 없는 곳으로 가족과 친구, 문화생활까지 포기하고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모 씨(26)도 학점과 스펙이 좋은 상위권 취업준비생들은 대부분 공기업을 포기하고 대기업이나 금융권으로 목표를 바꿨다며 이제 공기업을 타깃으로 하는 부류는 중위권이나 지방대생들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공사 관계자는 최근 1, 2년 사이 입사 지원자를 분석해본 결과 이른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며 특히 지방 이전이 확정되고 지난해 신사옥 기공식을 한 뒤로는 서울 지역 지원자가 줄고 해당 지역 대학 졸업생들의 지원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공기업 준비 수험서의 인기도 떨어졌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8월을 기점으로 관련 서적의 판매량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10월에는 판매량이 7000권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감소했다.

신입사원들도 퇴직 러시

젊은 직원들의 잇따른 퇴직 러시도 공기업에는 골칫거리다. 지원자가 줄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힘든 데다 애써 키워놓은 직원들이 뛰쳐나가는 바람에 인적자원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지방 이전을 앞둔 A공사의 퇴직자는 2008년 이후 매년 두 자릿수에 이른다. 2010년에는 가장 많은 26명이 회사를 그만뒀다. 올해는 지난달까지 이미 21명이 사표를 냈다. 올해 초 이 공사에 입사한 박모 씨(29)는 입사 동기 중 상당수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이직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나도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지방에 함께 내려갈 수 없다고 해 민간 기업을 알아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중도 퇴직자가 거의 없는 것으로 유명한 B공사 역시 지난해 한꺼번에 14명이 회사를 떠났다. 공사 관계자는 지방으로 내려가기 전에 결혼하려는 젊은 직원들이 많아져 사내 커플이 급증하고 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지방 이전을 앞두고 국책연구소의 박사급 인력들도 동요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연구위원 및 연구원 명을 채용한다고 공고했다. 내년 11월 세종시 이전을 앞두고 연구인력 이탈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KDI가 두 자릿수의 연구인력 채용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울산으로 이전할 예정인 에너지경제연구원 소속 일부 연구원들은 대학과 대기업 연구소에 이직을 타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밖에 국가정책 수립에 관여했던 공공기관의 박사급 연구 인력들도 삼성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원 등 주요 민간 연구소로 옮기기 위해 관련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현 정세진 jhk85@donga.com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