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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위키리크스와 외교관

Posted December. 02, 201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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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11일 유명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정확히 몇 명인지 확인해 줄 수는 없지만 해외에서 활동해 온 고위급 북한 관료들이 최근 한국으로 망명했다고 말했다. 미국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문서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우리 정부는 불법 수집된 정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내용 자체로는 중대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위키리크스가 세계 각국의 미국 공관들이 국무부와 주고받은 최근 3년간의 전문 25만 건을 공개하면서 세계 외교가가 충격에 빠졌다. 하나하나가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이라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다. 이탈리아의 프랑코 프라티니 외무장관은 이번 사태를 세계 외교가의 911 테러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세계 최고 정보망과 보안시스템을 갖춘 미국의 외교안보 문서가 한 순간에, 그것도 통째로 유출돼 세계 각국의 외교 파트너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아이러니다.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은 스웨덴의 체포영장에 근거해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언 어샌지를 성추행 혐의로 체포하라는 적색경보를 회원국에 내렸다. 오바마 행정부는 위키리크스가 미국 국익과 외교활동을 침해했다며 설립자인 어샌지와 조직에 대해 간첩법을 적용하는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미국 국무부는 정보의 추가 유출을 막기 위해 외교 전문 데이터베이스와 군 내부전산망 간의 연계를 잠정 중단했고, 프랑스 정부도 전문 발송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일지 몰라도, 외교안보 문서가 디지털화될수록 유사 사고의 발생 소지가 높아진다는 것이 각국의 걱정이다.

어샌지는 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클린턴 국무장관은 미국 외교 인사들에게 미국이 서명한 국제규약을 어기고 유엔에서 스파이 행위를 하도록 지시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사임해야 한다고 거꾸로 큰소리를 쳤다. 이제 각국 외교관들은 서로 만나 정보를 주고받으며 속내를 털어놓기 어렵게 됐다고 푸념하고 있다. 그럼에도 외교 무대는 웃으며 와인을 나누는 시간에도 상대국의 속내를 훔쳐가는 냉엄한 첩보 전쟁이라는 현실을 위키리크스 사태는 새삼 드러내준다.

박 성 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