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사설] 숨은 피오리나를 찾아서

Posted October. 15, 2010 11:31,   

ENGLISH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에 출마한 칼리 피오리나는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실리콘밸리에선 드물게 엔지니어가 아닌 인문학도였지만 기술도 모르는 여자라는 편견을 물리치고 2001년 컴팩을 인수해 HP를 세계적인 정보통신(IT)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스스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었지만 남편이 데려온 두 딸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다섯 자녀를 키운 뒤 막내딸의 대학진학을 앞두고 정계에 입문했다.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를 지낸 새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도 젖먹이를 포함한 다섯 아이의 어머니다.

한국에선 일과 가정을 양립하며 최고위직에 오른 여성들의 이야기가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처럼 들린다. 동아일보가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100대 기업의 여성 인력 활용 현황을 조사했더니 여성 근로자는 22.9%인데 비해 여성 관리자는 7.1%, 여성 임원은 1.1%에 그쳤다. 지난해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처음으로 남성을 넘어섰고 여성 취업자가 늘고 있음에도 30대에 임신과 출산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경력이 단절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한창 일할 나이에 일을 그만둬 경륜과 리더십을 요구하는 고위직 진출이 힘들어진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세계 13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12일 발표한 2010년도 성 격차 지수(GGI)에서 한국은 104위를 기록해 지난해(118위)에 이어 100위권 밖에 맴돌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111위), 입법자 및 고위관료 관리직(111위) 및 정치적 권한(86위) 점수가 특히 낮았다. 특히 고학력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낮은 현상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김성주 성주D&D 회장도 올 7월 전국경제인연합회 포럼에서 고급호텔에서 점심 때 노닥거리는 상류사회 여성들을 보면 가슴이 철렁한다며 대학교육 받고 유학까지 다녀온 여성들이 일하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가 없다고 경고했다.

세계적 컨설팅회사인 맥킨지는 보고서에서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여성인력 활용 외엔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가장 중요한 소비자로 떠오른 여성을 이해하고 21세기 변화된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려면 여성인력의 존재가 필수적이란 얘기다. 고위직 여성은 남성위주의 조직문화를 가정 친화적으로 바꿀 수 있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의 시각을 반영해 안전과 건강을 중시하고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여성 인력의 활용도를 높이자면 육아지원 시스템과 함께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도록 유연한 근무체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