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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의에 목마른 사회

Posted July. 11, 201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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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영국 선원 4명이 구명보트를 타고 남대서양을 표류하고 있었다. 이들이 탔던 배는 폭풍에 떠내려갔고 구명보트에는 마실 물도 음식도 없었다. 선원 중 막내였던 17세 소년은 타는 갈증을 견디지 못하고 바닷물을 마시는 바람에 죽어가고 있었다. 20일째 굶주림에 지친 선원들은 소년을 죽이고 인육과 피를 마시며 연명하다가 가까스로 구조됐다. 재판정에 선 이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순순히 시인했다. 이들에게 살인죄를 묻는 것이 정의일까, 아닐까.

국내에서 최근 번역돼 베스트셀러가 된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이런 골치 아픈 에피소드를 제시하며 독자들을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수천 명을 죽일 수 있는 폭탄의 위치를 알고 있는 테러리스트를 고문해 자백을 받아내는 것은 나쁜 일인가? 자식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가 장기()를 파는 것은 잘못인가? 대다수 시민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거지를 강제 수용하는 일은 정당한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유보한 채 정의의 본질을 탐구하는 지적 탐험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경제 분야에서 정의는 정책이나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직결된다. 경제가 성장하면 양극화가 심화하는 것은 세계 대다수 나라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그렇다면 양극화 해결을 위해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의 돈을 국가가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거나 마이클 조던과 같은 스포츠 스타에게 거액의 세금을 물리는 것은 정의에 부합하는가? 국내 좌파 지식인들이 이런 문제에 해답을 찾으려고 이 책을 열공한다는 소식이다. 정의의 문제를 정치상황과 결부시켜 활용하려는 의도인지도 모르겠으나 정의는 그렇게 간단하게 규정될 수 없는 일이다.

정의의 문제조차 포퓰리즘이나 편 가르기의 대상이 되는 우리 현실은 안타깝다. 이 책의 어느 부분에도 좌파나 우파에 대한 언급은 없다. 저자는 최대다수의 최대만족을 추구하는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와 개인의 선택권 및 최소국가를 강조하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의 견해를 담담하게 대비하고 있다. 정의로운 사회는 공리나 선택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시민의식 봉사 희생 등 공동선()을 되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견해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