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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뒤 대원국제중 학생된 이일심 양

Posted April. 09, 2010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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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는 열두 살 이일심 양의 몸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 번째 탈북. 이번에도 붙잡힌다면 다음 기회는 없다는 두려움이 이 양을 자꾸만 떨리게 만들었다. 두 오빠의 손을 잡고 강을 건넌 이 양은 은신처에 몸을 숨긴 채 아침을 기다려야 했다.

아침이 오면 우릴 도와줄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삼남매는 서로 위로하며 해가 떠오르기만을 기다렸다.

이 양은 함경북도 무산군 삼봉노동자구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이 되던 2001년, 어머니는 소식이 끊겼고 아버지 손에 이끌려 학교도 그만둔 채 산골에서 농사일을 시작했다. 그해 가을, 더는 못살겠다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삼남매는 처음 두만강을 건넜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붙잡혀 북송됐다. 이 양은 80일간 철창신세를 졌다.

이듬해 이 양의 아버지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삼남매는 독방에 갇혔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 아버지의 행방을 물으며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때렸지만 삼남매는 끝까지 모른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남한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1년 후였다.

삼남매는 2004년 10월, 아버지를 찾아 두 번째로 강을 건넜다. 한국어에 능숙한 낯선 남자가 100명이 모이면 남한으로 보내준다며 다가왔다. 그를 따라 낯선 방에서 기다린 지 며칠, 100명이 거의 다 모여 한껏 기대에 부풀었을 때였다. 남자는 지금까지 탈북자들에게 받은 돈을 가지고 젊은 여성 탈북자 한 명을 데리고 달아나면서 남은 탈북자를 중국 공안에 신고했다. 강을 건넌 지 13일 만의 일이었다. 이 양은 북송되면서 너희 두 번째지? 이젠 끝이다라는 말을 듣고 정말 죽나보다라고 생각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몽둥이세례를 당하면서 이 양은 죽는 한이 있어도 도망쳐야겠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세 번째 탈북. 남한에 있는 아버지가 준비한 돈을 경비대에 건네고 밤중에 강을 건넜다. 삼남매를 포함한 탈북자 11명은 차로 한참을 달린 후에야 몽골 국경에 다다랐다. 여기서부터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도시까지 가야 했다.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인 것 같은 사막을 몇 날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걸었다. 겨울 사막을 걷다가 얼어 죽은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울다 걷다를 반복한 게 며칠이었을까. 마침내 사막이 끝나고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몽골에서 한국으로 온 뒤 이 양은 탈북청소년 보호시설을 거쳐 초등학교 4학년이 됐다. 학교에 다녀본 적이 거의 없어 글 읽기와 덧셈 뺄셈만 겨우 할 수 있었다. 밤을 새우며 학교에서 배운 걸 통째로 외웠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라며 이를 악물었다. 성적은 금세 1, 2등을 다투었다. 특히 글짓기는 여러 번 상을 탈 정도였다.

이 양은 2009년 서울 대원국제중에 입학했다. 우수한 학생들 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반 친구들보다 성적이 한참 떨어져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래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학교는 작년 여름부터 기초가 부족한 이 양을 위해 대원외고 학생 3명을 방과후 과외교사로 붙여줬다. 이 양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은 수학과 역사. 세계사를 가르치는 서나현 양(18)은 일심이에게 그리스 문명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예요. 그래도 의욕적으로 공부하려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한양욱 담임교사는 1학년 때는 소극적이던 일심이가 2학년 때는 스스로 학급 임원 선거에 나서 부회장이 됐다고 말했다.

이 양은 꿈이 많다. TV에서 본 멋진 검사가 되고 싶은 한편으로 특기를 살려 작가도 되고 싶다. 통일이 되면 자신의 남한 적응 경험을 북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북한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가 문득 되살아날 때마다 이 양은 달린다. 달리기가 취미예요. 가슴이 답답할 때 달리기를 하면 시원해지거든요.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리던 이 양이 처음으로 웃어보였다.



남윤서 bar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