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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로 드러난 남북정상회담 비밀 접촉

Posted October. 24, 200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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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3일 남북이 지난주 싱가포르에서 비밀리에 만나 정상회담 의제를 논의했다는 언론 보도를 시인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다 지난 얘기인데 새삼스럽게라며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이 있었음을 사실상 확인했다. 청와대는 전날까지도 아는 바 없다 혹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구체적인 접촉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A3면에 관련기사

이번 접촉은 지난해 2월 출범 이후 남북 정상회담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여러 차례 강조해온 이명박 정부가 실제로 행동을 취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번 접촉의 의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정상회담을 위한 물꼬 트기용이라는 해석이 많다. 이 대통령은 22일 훈센 캄보디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북한도 (한국이 북핵 해법으로 제시한 그랜드 바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해 의제가 사전 조율됐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비밀접촉 방식을 택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남북관계에서 투명성과 국민적 합의를 누누이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07년 4월 헌정회를 예방해 국민의 합의 없이 투명하지 않은 어떤 회담도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선 뒤인 지난해 3월 26일 통일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국민 뜻에 반하는 대북 협상은 없다. 남북 간 문제는 매우 투명하고 국제사회에서 인정하는 룰 위에서 준비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접촉의 전후 과정은 그간 정부가 밝혀온 원칙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남측 대표는 당국자가 아닌 이 대통령과 친분이 깊은 정치인 또는 민간 인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사용되던 비선()과 다를 것이 없다. 또 정부 당국자들은 접촉 사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주무 책임자인 김성한 대통령실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23일까지도 아는 것이 없다고 일관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이 대통령이 진짜 비선을 동원했거나, 아니면 당국자들이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내부에서는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 낮은 단계의 실무 접촉까지 다 공개해야 하는 건 아니다라는 반론이 나온다. 그러나 이 시점에 정상회담이 필요한지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것도 아닌 상태에서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정상회담을 추진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난을 피하기는 힘들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남한의 새 정부가 출범하면 1, 2년 동안 비방과 무력시위를 한 뒤 정상회담을 미끼로 손을 내밀고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북한의 오랜 생존 수법이라며 남한의 권력자들은 인기 관리와 정권 연장 등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북한이 내미는 손을 잡아왔고 현 정부도 이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고기정 신석호 koh@donga.com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