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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42.195km 봉달이가 울었다

Posted October. 22, 200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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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였던 한화 송진우(43)의 은퇴경기에 야구인이 아닌 한 선수가 초대를 받았다. 꾸준함이나 성실함이라면 저보다 낫죠. 당분간 이런 선수가 또 나오겠어요? 프로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린 송진우는 21년간의 현역생활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초대한 그 선수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이 선수는 송진우의 평가가 그냥 한 번 해본 말이 아니라는 걸 입증했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39삼성전자)가 은퇴경기에서 우승하며 20년 마라톤 인생을 마무리했다. 그는 21일 대전에서 열린 제90회 전국체육대회 마라톤 남자 일반부에 충남대표로 출전해 2시간15분25초의 기록으로 1위에 올랐다. 1990년 충북 전국체전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으로 완주한 뒤 현역 세계 최다인 41차례 완주기록을 세웠다.

이봉주는 은퇴경기인 만큼 완주하는 데 목표를 두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레이스에서는 달랐다. 이봉주는 30km 지점부터 독주하기 시작했다. 2시간17분32초로 2위를 차지한 유영진(30청주시청)보다 2분 7초 앞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봉주는 결승선 테이프가 가슴에 닿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생각하니 뭔가 울컥하기도 했다며 마지막 레이스를 마친 소감을 밝혔다.

41번의 완주 중 어느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을까. 이봉주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고 2001년 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했다. 1996년 방콕,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7분20초는 9년째 깨지지 않는 한국기록이다.

하지만 이봉주는 이날 우승으로 마감한 은퇴경기를 인생 최고의 레이스로 꼽았다. 그는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뜻을 이룬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마라톤을 이끌어 온 맏형답게 자신의 빈자리에 대한 걱정과 함께 후배들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오늘 레이스에서도 느꼈지만 후배들이 상대 선수의 눈치를 너무 살펴요. 자기만의 레이스를 자신 있게 펼칠 필요가 있습니다.

이봉주는 눈물이 없는 남자라는 게 주위 사람들의 얘기다. 이봉주 자신도 마라톤을 한 뒤로는 울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날 눈물을 흘렸다. 경기 후 은퇴식에서 20년 선수생활을 회고하는 순간에 그랬다. 봉달이의 눈물은 아름다웠다.



이종석 김동욱 wing@donga.com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