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좌 도전 오은선 씨, 안나푸르나에서 온 편지

안녕하세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있는 오은선입니다.

많은 국민이, 특히 여성분들이 관심을 갖고 제 도전을 응원하고 계시다는 말을 듣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펜을 들었어요. 우선 추석 때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라 국민께 한가위 선물을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해요. 현지 기상 등을 고려했을 때 하산을 결정한 건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더욱 철저히 준비해서 10일 이후에 있을 재시도 때는 꼭 성공해서 기쁜 소식 전해 드릴게요.

많은 여성분이 저를 보고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과분한 칭찬이라 얼굴이 화끈거리는 한편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북한산 인수봉을 본 후 산을 좋아하게 됐어요. 대학교 때 산악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요.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주말에 산에 오르기 위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심히 일했어요.

1993년 에베레스트 여성원정대에 참가할 기회가 왔을 때는 이거구나 싶었죠. 그때 에베레스트 정상에 서지는 못했지만 히말라야 설산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그동안 산에 가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컴퓨터학원 강사, 전산직 공무원, 학습지 교사. 돈을 빨리 모으겠다는 마음에 스파게티 음식점을 차리기도 했어요. 온갖 일을 하면서도 지치지 않았던 건 산이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요즘 20대를 꿈을 잃은 세대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에게 산이 있듯이 많은 젊은이도 각자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겁니다. 여성 여러분,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물론 무작정 하라는 건 아니에요. 제가 산이 좋다고 일을 팽개치고 산만 다녔다면 오래 못 갔을 거예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립하는 게 중요해요.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홀로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좋아하는 걸 한다면 그 속에서 꿈을 찾을 수 있어요. 행복도 거기 있어요. 남과 비교하면서 돈, 명예 등에 신경 쓰기 시작하면 좌절하게 됩니다. 좋아하는 것 자체에 꿈과 행복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제가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여자이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남자든 여자든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산악계도 마찬가지고요. 누군가에게 기대려고 한다면 곧 한계에 부닥치게 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면 혼자라도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여자가 30, 40대가 되면 현실에 순응하게 된다고 말하죠. 저는 산악인이든 가정주부든 어떤 삶이든 값지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내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죠.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아줌마 팬들을 만나면 조그만 양반이 어쩌면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느냐고 많이 놀라세요. 맞아요. 저처럼 생긴 사람도 하고 싶은 일 다 합니다. 여러분이라고 못할 게 뭐가 있나요. 용기를 갖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 과감히 도전하세요.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꿈도 이제 시작인 걸요.

안나푸르나에서, 산악인 오은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