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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격의 조건을 생각한다

Posted October. 01, 2009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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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절대빈곤을 극복하고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해 세계의 찬사를 받는다. 대다수 국민이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하던 나라가 경제개발 40여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로 올라선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1987년 민주헌법이 제정된 이래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이 확고하게 확립됐다. 이번에 미국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 내년 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하기로 정함에 따라 우리는 당당히 국제사회의 현안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주역으로 올라섰다.

서구에서는 민주주의와 산업화가 뿌리내리는데 몇 세기가 걸렸다. 그러나 우리는 반세기만에 압축성장 압축민주화를 하다보니 곳곳에서 소화불량증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국민소득이 높아진다고 자동적으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의 품격과 시민의식이 선진국 수준으로 고양돼야만 진정한 선진국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 천박한 졸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손봐야 할 데가 한둘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유치는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우리나라의 국격()을 한 층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는 국력의 전통적 요소인 경제력 군사력 등 하드파워보다 국가의 품격 이미지 등 소프트파워가 부각되고 있다.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어윤대 위원장은 외국에선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북한 문제, 국회를 비롯한 정치와 폭력 시위 등을 꼽는다고 말했다. 우리의 폭력국회는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세계 최악의 국회로 첫손에 꼽을 만큼 나라망신을 시켰다. 폭력과 막말이 난무하는 국회상이 청소년 세대와 일반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크다.

우리 사회에는 법과 질서를 어기는 것을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처럼 생각하는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다.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22년이 지난 지금에도 시위 문화의 시계는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멈춰서 있다. 이익 집단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눈이 어두워 타인에 대한 배려와 법질서 준수를 소홀히 한다. 민주주의의 콘텐츠 면에서 아직 우리는 선진국이 되기에 멀었다.

이 대통령은 정치권과 국민에게 품격을 주문하면서도 청와대와 정부, 공직자와 공공기관의 자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과 집권세력 그리고 공무원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국민이 냉소하지 않는다. 행정의 투명도와 대국민 서비스 자세에서 우리는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