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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로 촌지가 도착했습니다.

Posted September. 24, 2009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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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콘이 도착했습니다.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H 씨(29여)의 휴대전화로 수업 중 문자메시지가 날아 왔다. 평소 친구들과 기프티콘을 자주 주고받는 H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뗐다. 편의점에서 음료수 같은 먹을거리로 바꿀 수 있는 선물이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엄마예요 20만원 상품권 전송

그러나 수업이 끝나고 발신번호를 보니 잘 모르는 번호였다. 누가 보냈을까 하고 궁금해 하며 무선 인터넷에 접속해 확인해 보니 일반 기프티콘이 아닌 모바일 키프트 카드 20만 원 권이었다. H 씨는 처음에 누군가 잘못 보낸 거라고 생각했다. 발신자에게 전화를 걸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엄마예요. 추석인데 변변한 선물도 못 해드릴 것 같아서 보냈어요. 필요한 화장품 사서 쓰세요. H 씨는 그제야 자기도 모르게 촌지를 받았다고 깨달았다. H 씨는 나중에 교대 동기들과 얘기를 하다보니 이런 방식으로 선물을 받은 친구들이 꽤 있었다며 추석을 앞두고 비슷한 사례가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프티콘은 원래 제품과 일대일로 교환하는 방식이었지만, 최근에 한 카드 업체에서 모바일 기프트 카드를 내놓으면서 현금처럼 쓸 수 있게 됐다. 한번에 선물할 수 있는 금액도 50만 원으로 올랐다. 저가 제품이 주를 이루던 일반 기프티콘과 달리 모바일 기프트 카드로는 화장품이나 온라인 쇼핑몰 이용처럼 상대적으로 품격 있는 제품도 선물할 수 있다. 2006년 처음 SK텔레콤에서 시작한 기프트콘 서비스는 최근 금액이 오르며 촌지 용도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또 일반적으로 선물을 보내려면 직접 찾아가거나 집 주소를 알아야 하지만 이 카드는 상대의 휴대전화 번호만 알면 보낼 수 있다. 전달도 확실하다. 택배로 배달한 선물은 교사가 되돌려 보낼 수도 있지만 이 카드는 무심결에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저장된다. H 씨는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기프티콘이라면 성의라고 생각해 받을 수도 있지만 이 정도 금액은 부담이라며 돌려주는 방법을 몰라 고민이라고 말했다.

돌려 줄 방법도 마땅치 않아

카드를 보낸 사람이 먼저 입을 열지 않으면 비밀 보장도 가능하다. 이 카드 업체 관계자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전송 기록이 남지만 일일이 누구에게 보냈는지 추적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교육 당국에서 단속에 나서도 전체 학부모 계정을 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적발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이 카드를 보내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교사들 수신 기록을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다. 단체 반발이 뻔하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올 7월 촌지보상금제를 도입해 촌지 수수를 신고 받으려다 교원 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쳐 무산됐다. 당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를 비롯한 교원단체는 청렴한 대다수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김동석 한국교총 대변인은 학부모들이 휴대전화 번호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원하지도 않은 촌지가 들어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며 혹시 잘 몰라서 실수로 모바일 상품권을 받은 사례가 접수되면 학부모께 정중히 돌려줄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기록이 남는 은행 계좌를 대신해 일종의 송금이 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한번에 이용 가능한 금액에 제한이 있어도 여러 차례로 나누면 대량 송금이 가능하다. 떳떳하지 못한 거래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황규인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