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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떼라, 지원품 내라 통제와의 전투

Posted September. 16, 2009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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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한 지방도시에 사는 30대 중반 주부 이선희(가명) 씨는 17일로 끝나는 150일 전투를 되돌아보면 화가 치민다. 150일 동안 나라 경제가 좋아졌다고 느껴지는 것은 달리 없다. 하지만 대신 전투를 한다는 명분에 그는 평소보다 몇 배나 통제에 시달려야 했다.

그가 150일 전투기간 중 겪은 것 중 가장 황당하고 화나는 일은 당국이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강제로 떼어내도록 한 것이다. 불과 2년 전 간부들은 베란다에 창문을 달 것을 지시하면서 방 온도가 4도 올라가고 먼지도 안 들어와 깨끗해진다고 선전했다. 이 씨도 장마당에 가서 20만 원(약 52달러) 넘게 주고 창문을 해 달았다. 이 씨네 네 식구가 한 달 반은 넘게 먹고살 수 있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베란다 커튼도 아파트에서 공동 구매했다. 그런데 2년도 안 된 지금 간부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이번엔 창문을 다시 떼어내라고 한다. 왜 그러느냐고 항의도 했지만 도시 미화를 위해서라는 짧은 답변만 돌아왔다. 이 씨네 아파트에는 큰 맘 먹고 100달러가 넘는 알루미늄 창을 구매한 사람도 있다. 창문을 단 베란다 내부에 타일을 붙인 세대도 많은데 이것도 다시 석회 칠을 해서 원상회복시켜야 한다. 이런 해프닝은 전국 도시에서 일제히 벌어졌다. 졸지에 거금을 날린 사람들은 불만이 컸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창문을 떼어낸 베란다에 화분 5개씩 올려놓으라는 지시가 또 떨어졌다. 오전 6시면 어김없이 인민반장이 밖에서 청소하시오 수매하시오라고 소리치던 것이 이번엔 동사무장까지 나서 확성기로 화분 내놓으시오라고 소리친다. 북한에선 꽃 대신 선인장을 많이 기른다. 이 씨는 선인장에 조화를 묶어 베란다에 내놓는다. 바람이 불면 화분이 떨어지는 일도 잦다.

이 씨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에 14일 가까운 몇 해 안으로 전국의 도시와 마을이 새 단장을 하고 나라의 면모가 크게 바뀐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린 줄 알 수가 없다. 이를 두고 남한 언론에서 북한에 새마을운동 같은 바람이 불고 있다고 분석한 것도 물론 알 길이 없다. 그녀는 2년 사이에 베란다 창문을 떼라 붙이라고 변덕부리는 간부들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150일 전투기간에는 각종 노력 동원도 늘어나고 지원품 명목으로 집집마다 걷어가는 것들도 곱절 많아졌다. 그뿐 아니다. 갖가지 이름의 단속반들이 수시로 아파트를 훑는다. 문을 열면 젊은 여자가 왜 동원 안 갔느냐는 시비부터 시작해 뭔가 구실을 만들어 뇌물을 받아간다. 이 씨는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집안에서 숨죽인다.

하지만 이 씨는 노동당도 맘대로 못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베란다 사건만 봐도 그렇다. 당초 간부들은 1층 방범창까지 모두 뜯을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도둑을 감당할 수 없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집단적으로 거부하자 없던 일이 됐다. 150일 전투 시작 전에 장마당에는 매매 금지품목을 적은 공고가 나붙었다. 거의 모든 품목이 단속대상에 올랐지만 주민들의 반발로 지금도 장마당에서 사고팔지 못하는 것이 없다. 7월까지는 거리에 규찰대가 늘어서서 바지 입은 여성들을 단속하고 희롱했다. 이 씨는 농촌 지원을 나갈 때나 자전거를 탈 때도 치마를 입어야 했다. 하지만 여성들의 원성이 점점 커지자 당국은 8월부터 바지 착용을 허용했다.

이런 변화의 원동력은 주민들의 불만이다. 하지만 최고지도층을 겨냥한 공개적인 불만은 거의 없다. 적발되면 온 가족이 소문 없이 사라진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힘든 원인을 일부 간부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주민들의 의식 수준 때문이다. 이 씨도 사람들 앞에서 먹고살기도 힘든데 꽃 내놓으라, 치마를 입지 말라는 등 사소한 일로 백성들을 들볶아 당과 대중을 이간질시키려는 나쁜 놈들이 있다고 말하고 다닌다. 이건 그녀의 진심이다.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북한 당국은 150일 전투 기간에 상당히 많은 비리간부들을 적발해 공개 처벌했다.

150일 전투는 17일로 끝나지만 주민들의 얼굴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당국이 23일부터 12월 31일까지 100일 전투를 또 벌인다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시달림이 기다리고 있을지 북한 주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주성하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