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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존엄사법만들 때 됐다

Posted May. 20, 200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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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은 그제 말기 암환자나 가족의 동의가 있다면 존엄사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2007년에 말기 암환자 656명 중 85%인 436명이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관련 자료도 함께 공개했다. 연명치료 중단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서울대병원이 이를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다. 말기 암환자 및 그 가족의 절절한 현실을 못 따라가는 존엄사 관련 법제도에 대한 고발인 셈이다.

지난해 세브란스병원이 식물인간 상태의 김 모(77) 씨에 대한 1심 법원의 존엄사 인정 판결에 불복해 상고할 때만 해도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회생 불가능한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을 줄여주어야 한다는 현실론 못지않게 패륜적인 생명 방기()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반론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2월 연명치료를 않고 평화롭게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의 서거 이후 존엄사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말기 에이즈 환자에 대한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 대만도 2000년부터 말기환자가 사전지원서를 쓸 경우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도 판례에 따라 회생 대안이 없으면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명치료 중단 행위에 대해 환자가족이 고소하면 의사가 처벌받는다. 2004년엔 경제적 이유를 내세운 가족의 뜻에 따라 뇌출혈 환자의 퇴원을 허락한 서울 보라매병원 의사에게 살인방조죄가 적용돼 유죄가 선고된 바 있다.

의료현장에서 환자 또는 가족의 동의와 의사의 판단에 따라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를 쓰지 않는 소극적 안락사()가 이루어진 경우가 비단 서울대병원만은 아닐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면 존엄사 법제화를 미루기만 할 일은 아니다. 21일에 있을 대법원의 존엄사 최종판결에는 이 같은 현실이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생명은 무엇보다 존엄하지만 행복하게 살 권리만큼 품위 있게 죽을 권리도 중요하다. 환자가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거부할 때의 소극적 안락사는 수용하더라도, 회생 가능성이 없는 질병이라고 해서 환자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적극적 안락사는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국회는 연명치료 중단 등에 관한 기준과 절차, 방식 등을 규정한 입법을 서둘러 사회적 혼란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