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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방글라데시 소년의 죽음

Posted May. 16, 200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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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5일 성탄절 날 저녁 서울 국철 신도림역과 영등포역 구간에서 16세의 한 방글라데시 소년이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었다. 소년의 이름은 미잔 모하메드. 그는 두 발목과 손가락 일부가 절단됐다. 철도공안사무소 서울분소는 미잔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 자살을 시도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잔은 서울분소의 도움으로 서울 K병원에 입원했다. 3개월 후인 3월 28일 새벽 미잔은 병원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미잔은 2007년 가을, 한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던 형(말론41)을 따라 한국에 왔다. 소년은 서울 동대문의 한 공장에서 책을 제본하는 일을 했으며 지난해 겨울 형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혼자 남았다.

주변에서는 어린 나이에 타국에서 불법체류자로 혼자 남겨진 것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았다. 1600여만 원에 이르는 치료비도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이란 얘기도 있었다. 병원 측은 당시 치료가 끝나 미잔에게 퇴원을 요구했지만 치료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남아 있었다. 연대 보증인은 있었지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잔이 자살한 후 서울외국인센터는 모금과 한국이주민건강협회의 도움으로 600여만 원의 치료비를 지불했다. 나머지는 병원 측이 부담했다. 미잔은 죽었지만 고향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센터 측은 방글라데시의 형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간다고 달라질 것은 없으니 유해만 보내 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려운 아이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모든 아동(18세 미만)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발달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1년 이 협약에 가입했다. 하지만 국내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에게는 사실상 선언적인 문구에 불과한 실정이다. 불법체류 사실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 병원을 잘 찾지 않는 데다 건강보험 가입이 되지 않아 치료비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

지난해 한국에서 태어난 A 양은 몇 달 전부터 감기 증상을 보였지만 병원에 가지 못해 결국 폐렴으로 악화됐다. 비용도 만만치 않은 데다 불법체류 노동자인 페루 출신 부모가 신분 노출을 꺼렸기 때문이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3월 현재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16세 미만 불법체류 아동은 1만7000여 명.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이들에게 의료혜택을 주는 곳은 없다. 민간단체인 한국이주민건강협회가 외국인 의료공제지정병원 사업을 하고 있지만 병원 수가 부족한 데다 거주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은 인근 일반 병원을 이용하고 있다.

1402명만 초중고교 다녀

불법체류자 자녀도 법적으로는 초중고교 입학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필리핀 불법체류 노동자 자녀인 C 군(12)은 지난해 3곳의 초등학교를 전전한 끝에야 서울의 한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학부모들의 반대 등이 심해 거절하는 학교가 많았기 때문이다. C 군의 입학을 허락한 이 학교도 처음에는 이런 애를 여기 데려다 놓으면 골치만 아프다며 난색을 표했지만 성동외국인센터의 도움으로 간신히 입학할 수 있었다. 성동외국인센터 신혜영 교육팀장은 초등학교 10곳 중 4곳 정도가 이주노동자 자녀의 입학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라며 법에도 보장된 초등학교 입학이 이런 상황인데 중고등학교 입학은 어떻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이주노동자 자녀들은 모두 1402명(초등 981명, 중학교 314명, 고교 107명)뿐이다. 1만7000여 명으로 추정되는 불법체류 노동자 자녀 중 대부분이 정규교육에서 방치된 셈이다. 일부 아동은 성동외국인센터 등 이주노동자 복지시설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정규학교가 아닌 방과 후 학교 개념. 그나마 최근 경기 침체로 부모들의 실직이 늘면서 학생이 크게 줄었다. 부산대 사회복지학과 이기영 교수는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8090%는 한국에서 정착해 생활할 수밖에 없다며 아동청소년의 의료와 교육에 대해서는 인권의 측면에서 복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구 한상준 sys1201@donga.com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