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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속 어둠의 끝을 더듬으며 땅밑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들

터널 속 어둠의 끝을 더듬으며 땅밑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들

Posted January. 23, 200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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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시 30분 경. 지하철 5호선 광나루 역 플랫폼에 방화 행 첫차가 들어왔다. 아직 한산한 지하철엔 몇 사람만이 앉아 있어 을씨년 스런 분위기가 연출됐다.

지하철 2호선 시청방향으로 갈아타 6시가 넘으니 사람들은 서서히 늘어났다. 일찍 출근길에 나섰다는 회사원 양영우(35)씨는 최근 지하철 이용객이 증가한데다 불황 때문에 회사에서 다들 더 긴장을 하는 지 직장인들 출근시간이 전반적으로 빨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7시가 넘었다. 직장인들의 출근물결이 거세지자 시민들이 보고 버린 신문을 모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들의 손길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무가지가 쌓여가자 노인들은 선반위에 쌓인 신문들을 수레, 배낭, 마대 자루 등에 쓸어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들 노인들이 아침시간 꼬박 신문을 모아서 버는 돈은 20003000원 안팎에 불과하다. 국내 경기침체로 폐지를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제지업체가 생산량을 줄이는 바람에 폐휴지 1kg당 200원 하던 것이 4050원 정도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하방에 혼자 살며 신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는 이종순(70여)씨는 요즘은 폐휴지 가격이 뚝 떨어져 반찬값도 안 나온다며 할 것 없는 노인네들에다 일 없어 노는 젊은 사람들까지 나서 갈수록 지하철에서 신문 줍기도 힘들어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출근행렬과 폐휴지 수거노인들의 신문 줍기 전쟁이 잦아든 오전 11시경. 1호선 인천행 지하철은 한결 한가로워졌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지나자 생계를 위해 지하철을 누비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지하철 차량 안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다.

오후 2시 10분경 1호선 시청역 플랫폼에서 마주친 먼지 털이 판매상은 요즘 지하철 안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이 20% 정도 늘어난 것 같다며 하도 상인들이 많다보니 때로는 다른 상인 없는 차량을 기다리며 열차를 몇 대씩 그냥 보낸다고 말했다.

그는 워낙 경기가 어려우니 장사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판매 품목도 CD, 조명 등에서 장갑, 스타킹 등의 1000원 짜리 생필품으로 단순화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지갑을 꼭꼭 닫아 장사는 쉽지 않아 보였다.

2호선 시청역 가판대에서 신문을 판매하는 조옥난(66여)씨는 요즘은 사람들이 몇백 원짜리 신문 하나를 살 때조차도 동전을 만지작 거리며 고민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밤 10시경 1호선 종각역. 역사는 노숙자들의 보금자리로 변해있었다. 박스로 이부자리를 만들어 몇몇 노숙자가 잠을 청하는 가운데 일부는 구석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술자리에 끼어 말을 붙이자 한 노숙자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며 인력시장에 아침마다 가지만 다 공치고 돌아온다며 또 소주 한잔을 들이켰다.

종각역 지하상가에서 경비를 보고 있는 임명수(67)씨는 확실히 불경기라 그런지 노숙자가 늘었다며 겉보기에는 말끔해 보이는 사람들이 여기서 자고 아침이면 일어나 나간다고 말했다.



장윤정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