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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멍들게 하며 병드는 우리

Posted November. 17, 2008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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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헤드족처럼 외국인을 죽이고, 심하게 폭력을 가하는 집단은 아직 없죠. 하지만 한국도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한 모욕적인 단어를 아주 쉽게 쓰는 것 같아요.

4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중국인 회사원 L(30) 씨.

그는 한국인들은 학력,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짱개, 짱골라, 중국놈 같은 단어를 너무 자연스럽게 쓴다며 이 말이 중국인들을 얼마나 불쾌하게 하는지 한국인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거주 외국인 100만 명 시대를 맞아 제노포비아를 막고 건강한 다문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설동훈(사회학) 전북대 교수는 다민족 사회의 경험이 짧다 보니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이 생활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며 이런 배타적인 측면이 외국인 범죄 증가와 경제위기 상황과 맞물려 제노포비아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생활형 범죄로 적대감 증가

많은 전문가들은 제노포비아 확산의 주요 요인으로 외국인 범죄의 증가를 꼽는다. 외국인들은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기에 차별해도 된다는 그릇된 인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

최근 몇 년 사이 외국인 범죄 가운데 보이스피싱과 금융사기 같은 생활형, 지능형 범죄가 급증했다. 생활형 범죄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 지능범죄 발생건수는 2004년 1660건이었지만 지난해에는 4536건으로 2.7배 정도 증가했다.

경찰대 부설 치안정책연구소의 김윤영 박사는 보이스피싱, 금융사기 등의 생활형 지능범죄는 소수가 아니라 광범위한 국내인을 대상으로 한다며 이런 범죄는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인과 달리 외국인에 대해선 범죄 예방과 해결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상황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 관계자는 국내 장기 거주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귀화하기 전까지는 지문과 같은 범죄 예방 및 해결의 기본적인 데이터도 얻을 수 없는 실정이라며 외국인 범죄의 경우 그만큼 해결도 어렵다고 말했다.

경제위기, 외국인 차별 부추겨

최근의 경제위기도 외국인 차별의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낮은 임금으로 건설업 제조업 현장을 차지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불만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의 최대 거주지인 경기 안산시의 시청엔 외국인들이 너무 많아져서 우리들의 일자리를 뺏고 임금도 하향 평준화시킨다는 항의전화가 지속적으로 걸려온다.

노동부 산하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의 최병규 주임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인력시장의 경우 하루 일당이 10년째 5만 원에 머무르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들을 저임금 불만의 표적으로 삼는 일이 많다고 전했다.

다문화 공동체를 위한 제도 마련 시급

제노포비아를 막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인 인권보호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송태수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고려할 때, 국내 거주 외국인 수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갈등과 문제점이 나타나는 초기에 대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산시가 다음 달 시의회에 상정할 예정인 외국인 인권조례안이 대표적 모델. 안산시는 이 조례안에 피부색, 인종, 민족, 언어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일상생활 및 공공시설 이용에 차별과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넣을 계획이다. 김윤영 박사는 더 늦기 전에 제도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다문화 사회를 바람직하게 이끌어 갈 것인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세형 황형준 turtle@donga.com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