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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우포늪

Posted October. 23, 200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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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하순의 우포늪(경남 창녕)은 여름과 가을이 섞여 있었다. 지난여름 녹색 카펫을 깔아놓은 듯 물 위를 뒤덮었던 매자기, 줄, 마름 같은 물풀들은 누렇게 바래며 스스로 몸을 부스러뜨려 가라앉고 있었다. 세계적 희귀종인 둥근 가시연 잎(지름 2m) 위로 노랑부리저어새 큰기러기 왜가리 백로 청머리오리 같은 희귀 조류들이 날아다녀 늪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추위를 피해 시베리아와 북만주 등지에서 3000km나 날아온 것들이다. 곧 겨울이 닥치면 220여 종의 철새 3만여 마리가 둥지를 틀어 더욱 장관을 이룰 것이다. 19일 중국에서 기증받은 1급 희귀 조류 따오기도 이곳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약 2.31km(약 70만 평) 넓이의 우포늪은 1억4000만 년 전, 지구 해빙기 때 바닷물 상승으로 낙동강이 역류해 호수가 만들어진 후 서서히 대지로 바뀌는 과정에서 생성되었다고 한다. 공룡이 어슬렁거리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람 손이라고는 닿은 적이 없는 이 절대순수()의 땅에서 생명체들은 변함없이 살 곳을 만들고 새끼를 낳아 기르고 소멸하는 삶을 반복한다. 우포늪은 희귀 동식물의 완벽한 먹이사슬이 살아 있어 세계에서도 드문 생태의 보고()로 불린다. 식물은 우리나라 전체 식물의 10%인 435종에 달하며 동물은 조류 파충류 곤충류를 합쳐 1000여 종이다. 표본과 박제가 없는 천연 자연사박물관이다.

늪과 그곳에 살고 있는 생명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잊고 사는 공기의 존재를 느끼듯 인간의 삶도 거대한 자연의 일부이며, 사람이 먹고사는 일이 그것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영원과 찰나, 천태만상과 무념무상이 공존하는 우포늪에 서면 누구라도 철학자가 된다.

인간 세상에서 늪이라는 단어는 불안을 은유하지만 자연의 늪은 몸의 콩팥이나 허파처럼 자정작용을 하는 치유의 공간이다. 28일11월 4일 경남 창원에서는 이 치유의 공간인 늪을 보존하기 위해 준비된 국제환경회의 람사르총회(10회)가 열린다. 1971년 이란의 작은 도시 람사르(Ramsar)에서 시작된 이후 일본에 이어 아시아 지역에선 두 번째다. 한국에선 우포늪, 순천만, 무안갯벌 등 11곳이 람사르 협약에 따른 보존 습지로 등록돼 있다.

허 문 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